[데스크시각-정승훈] 입주자대표회의의 민낯 기사의 사진
최근 몇 년간 갑자기 뉴스의 키워드로 부상한 단어 중 하나가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다. 통계청의 ‘2017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우리나라의 총주택 1712만 가구 중 60.6%가 아파트였다. 2000년만 해도 국내 주택 중 아파트 비율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입주자대표회의의 입김이 세지고 권한도 늘고 있다. 덩달아 소위 ‘갑질’로 인한 논란도 자주 발생한다.

입주자대표회의가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게 된 계기는 경비원 고용 및 처우 문제가 불거지면서였다. 최저임금 인상 이후 경비원을 해고하겠다는 몇몇 입주자대표회의의 결정이 알려지자 이를 둘러싼 논란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휴게시간 등 처우와 관련된 문제도 불거졌다. 단지 내 임대아파트 거주자들, 혹은 인근 단지 거주자들과 통행로 등을 둘러싼 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4월 경기도 남양주시의 다산신도시에서 비롯된 택배차량 아파트 단지 내 진입금지 조치도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논란은 경기도 시흥시 등 다른 지역의 아파트 단지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영향력이 커지면서 입주자대표회의의 활동이나 결정이 자칫 특정인의 이익이나 손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부동산 가격 문제도 그중 하나다. 지난달 광주의 한 아파트 단지에는 새롭게 뽑힌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명의의 안내문이 배포됐다고 한다. 짤막한 출범 소감과 결의에 찬 당부가 담겨 있었는데 그 속에는 인근 공인중개사무소를 방문한 경험담이 녹아 있었다. 해당 단지 아파트의 가격이 3, 4년 전과 동일한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확인한 입주자대표회의는 안내문에서 “학군·지리적 여건이 최고인 우리 아파트가 가장 저평가되어 있다. 이사를 가더라도 정상가에 매매해줄 것을 부탁한다. 만약에 낮은 가격에 거래를 부추기는 부동산업체는 고발 조치한다”고 했다. 하한선을 만들어 아파트 가격을 방어하고 값을 올려 받자는 논리다. 해당 지역만의 일이 아니다. 전국 어느 곳의 아파트 단지에도 입주자대표회의의 입장은 비슷하다.

문제는 이런 움직임이 부동산 투기꾼들의 먹잇감이 되거나 선의의 피해자들을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일자 국민일보 기사 ‘114㎡ 7개월 만에 5억↑… 광주 아파트값 수상한 폭등’에 따르면 광주 곳곳에선 시세보다 5000만원 이상 높게 서류를 꾸며 신고한 뒤 60일 이전에 철회하는 허위 거래가 잦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일정기간 내에 아파트 거래를 백지화하면 세금을 안 내도 되는 등 아무 제재가 없는 점을 투기꾼들이 악용한다는 것이다.

높은 가격에 거래한 것처럼 신고하면 국토교통부 부동산실거래가격 사이트에 이 금액이 기정사실화되는데 이후 매물은 그 거래를 기준으로 책정되기 마련이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이사를 가더라도 정상가에 매매해줄 것을 부탁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이 가격에 매물을 내놔야 한다는 협박 아닌 협박인 셈이다.

광주 봉선동의 한 아파트 시세는 지난해 1월 3억9000만원에 거래된 후 지난해 9월까지 1건도 거래가 없다가 지난해 11월 5억5000만원으로 순식간에 1억6000만원이 올랐다. 그런데 올해 1월 4억3000만원으로 곤두박질쳤다가 지난 8월 8억원이 됐다고 한다. 실거래로 신고한 순수한 거래자와 투기꾼들이 부풀린 허위 거래가 뒤섞인 결과라는 분석이다. 광주 봉선동에서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건 일견 당연한 듯 보이지만 가격 변동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의도와 관계없이 자칫하면 부동산 투기꾼들에게 놀아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입주자대표회의 스스로 이를 경계해야 하는 것은 물론, 당국도 이 점을 유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승훈 사회2부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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