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소아’ 본명으로 나온 첫 시집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민음사, 268·252쪽, 1만2000원

산문집 ‘불안의 책’으로 국내 작가들을 잠 못 들게 했던 포르투갈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사진)의 대표 시선집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2권이 나왔다. 페소아는 세계적인 문학비평가 헤럴드 블룸이 서양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 26인의 목록에 셰익스피어, 조이스, 네루다와 나란히 올렸던 이름이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썼지만 스스로는 시인으로 여겼다. 국내에는 1994년 페소아의 이명(異名) 중 하나인 알베르투 카에이루라는 이름으로 시집 ‘양 치는 목동’이 처음 나왔지만 절판된 지 오래다. 이번 시집은 페소아라는 본명으로 처음 발간된 시집이다. 그는 적게는 70여개, 많게는 130개가 넘는 이명으로 시 2000∼3000편을 남겼다.

페소아는 이명을 단순한 가명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각 이명마다 독자적인 이력과 스타일을 가진 작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두 시집에는 그가 시인으로 창조해낸 이명 3인방인 전원시인 알베르투 카에이루, 고전주의자 리카르두 레이스, 모더니스트 알바루 드 캄푸스의 대표작이 실렸다.

각 시는 한 사람이 썼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이질적이지만 그 미적 가치는 난형난제라고 평가된다. 먼저 카에이루의 ‘양 떼를 지키는 사람’을 읽어보자. ‘내 영혼은 목동과도 같아서,/ 바람과 태양을 알고/ 계절들과 손잡고 다닌다//…// 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레이스란 이름으로 쓴 ‘담배 가게’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현대인의 허무를 묘사한다. ‘어린 소녀야, 초콜릿을 먹어,/ 어서 초콜릿을 먹어!/ 봐 세상에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페소아란 본명으로 쓴 시에선 “오 소금기 바다여, 너의 소금 중 얼마만큼이 포르투갈의 눈물인가?”라며 민족주의적 시풍을 선보인다.

페소아 연구자이자 이 책의 역자인 김한민은 “이명을 통해 다양한 시적 주체를 만들어낸 페소아는 정체성 없는 시인이라는 관념을 적극적으로 실험했다”고 한다. 페소아는 “셀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안에 산다”고 했다. 이명으로 쓴 페소아의 시들은 우리 안의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천재적인 방식으로 고요히 일깨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