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복음주의라는 울타리를 끝내 떠났나

복음주의 환멸/데이비드 햄튼 지음/최상준 옮김/CLC

그들은 왜 복음주의라는 울타리를 끝내 떠났나 기사의 사진
환멸(disenchantment)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꿈이나 기대나 환상이 깨어짐. 또는 그때 느끼는 괴롭고도 속절없는 마음.’ 이 단어가 복음주의와 만나는 현실은 달가운 일이 아니다.

‘복음주의 환멸’(CLC)이라는, 어쩌면 많은 크리스천이 회피하고 싶어 할지 모를 자극적인 제목의 이 책은 미국 하버드대 신학부 학장인 데이비드 햄튼 교수가 썼다.

햄튼 교수는 “복음주의 기독교의 다양한 종파와 한때 가깝게 지냈으나 결국 복음주의 안에 머물지 못한, 활동적이고 재주가 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라며 “무엇이 그들을 복음주의로 이끌었는지 그리고 후에 무엇이 환멸을 불러일으켰는지는 그들의 열정과 한계뿐만 아니라 복음주의 전통의 강점과 약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흥미로운 질문이다”라고 적고 있다.

그는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여성작가 조지 엘리엇을 시작으로 빅토리아 시대의 지성인 프랜시스 뉴먼, 페미니스트 사라 그림케,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미국에서 인종 문제에 목소리를 냈던 흑인작가 제임스 볼드윈에 이르기까지 복음주의를 떠난 거인 9명의 초상화를 그려내고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조지 엘리엇이 당시 런던 코벤트가든에 있는 크라운코트장로교회의 존 커밍 목사를 비판하는 내용은 한국의 상황과 오버랩된다.

저자는 “커밍의 반가톨릭주의, 성경문자주의, 과학적 발견에 대한 불신, 그리고 유대인들(하나님의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상반된 감정은 모두 광범위한 사회적 태도를 형성하며 기여했다”고 적어놓았다. 커밍을 강도 높게 저격했던 엘리엇뿐만 아니라 저자 또한 이렇게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적 맥락에서 미묘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오늘날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크리스천들이 기성교회의 일부 목회자에게서 느끼는 분노와 상당히 닮아있는 것을 보게 된다.

엘리엇뿐 아니라 나머지 인물들도 저마다 복음주의라는 울타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시대 크리스천의 고민 지점과 많이 떨어져 있지 않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것 자체를 꺼리거나, 죄악시하는 목소리가 나올까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게 우리의 현실 좌표를 여실히 드러낸다.

번역자 최상준 한세대 교수는 이를 의식해 “부디 이 환멸의 초상화 전시전이 이 땅의 크리스천들에게는 아름답고 순수한 신앙을 다시 회복해 나가는 디딤돌 전시회가 됐으면 한다”며 “환멸 모방 전시회가 아니라 환멸 극복 사례 연구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적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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