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아베 韓·日 신공동선언을 기대한다” 기사의 사진
국민일보 대회의실에서 2일 열린 좌담회에서 남기정 서울대 교수(왼쪽)는 “한국의 민주화세력과 일본의 리버럴 세력이 만나 양국의 새로운 미래를 기획한 것”이라고 공동선언을 평가했다. 조용래 대기자(가운데)는 “문재인정부가 적극적으로 일본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며, 양기호 교수는 공동선언 정신을 살려 “제2의 한·일 공동선언을 한국 정부가 먼저 제안하라”고 제언했다. 권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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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는 20년 전인 1998년 10월 8일 도쿄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하 공동선언)과 더불어 5개 분야 43개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공동선언은 일부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일 관계의 가이드라인으로 평가된다. 국민일보는 양기호(57) 성공회대 교수와 남기정(54) 서울대 교수를 초청해 좌담회를 갖고 공동선언의 의의와 현재적 의미 등을 짚어봤다. 좌담은 지난 2일 국민일보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사회=조용래 대기자

△조용래 대기자=공동선언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인 만큼 선언의 탄생 배경과 의미로 물꼬를 터보자.

△남기정 교수=두 가지 관점이 중요하다. 하나는 88년 한국의 ‘민족자존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 선언)을 기점으로 하는 한반도 화해협력 노력이고, 또 하나는 일본의 ‘고노 담화’(93년) ‘무라야마 담화’(95년)로 이어지는 한·일 화해협력 노력이다. 즉 98년 공동선언은 한반도 화해와 한·일 화해의 흐름이 하나로 모이는 내용이었다. 나아가 공동선언은 2000년 남북 정상 간 ‘6·15 공동선언’, 2002년 북·일 정상 간 ‘평양선언’으로 이어졌다.

△조 대기자=공동선언은 65년 한일협정 이후 33년 만에 이뤄졌다. 65년 협정 내용과 98년 공동선언을 비교해 본다면.

△양기호 교수=65년 협정문에는 과거 식민통치에 대한 사죄나 반성의 말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공동선언엔 식민지 가해국 일본이 피해국 한국에 통절한 사죄를 말하고 있다. 양국이 함께 나눈 문서에서 사죄를 표현한 최초의 문서이다.

△조 대기자=공동선언문 3항에서 오부치 총리는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경의를 표하고, 김 대통령(DJ)은 전후 일본 평화헌법이 국제질서에 기여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상호 평가는 지금도 양국이 간과하는 내용이다. 당시 두 정상의 리더십이 돋보인다.

△양 교수=DJ와 오부치는 각각 98년 2월과 7월에 취임했는데 오부치는 총리 취임 직전까지 외무대신을 맡아 DJ와는 소통이 원활했다. 정상 상호 간 존경과 신뢰, 그리고 배려가 있었으며, 두 정상 모두 지역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컸다.

△남 교수=일본의 리버럴 세력과 한국의 민주화 세력 간의 만남이었다. 이전의 한국 보수정부는 일본의 평화주의를 용공적으로 보고 그들의 한국 민주화운동에 대한 지원을 마뜩잖아했다. 일본의 리버럴 세력도 한국의 권위주의 비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 등장한 한국의 민주정부는 일본의 평화주의를 나름 평가했기에 일본의 리버럴 세력과의 적극적인 협력 틀이 마련된 것이다.

△조 대기자=공동선언의 초점은 서로의 장점을 평가하고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는 데 있다. 미래를 거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동선언은 그 시야가 동아시아로 확장돼 있다.

△남 교수=동북아의 작은 삼각형, 즉 한·일, 남북, 북·일이 각각 한 변을 이루는 삼각형을 상정해 보자. 남북, 한·일, 북·일 관계가 동북아 평화를 위한 세 기둥이다. 공동선언은 한·일이라는 밑변이 탄탄해지면서 남북, 북·일 선언으로 이어졌고 그로써 동북아 평화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양 교수=DJ는 일본의 전략적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최종 목적은 남북관계 개선이었는데 후방기지로서 한·일 관계를 먼저 풀어나간 후 한·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동아시아의 협력적 관계가 확장되는 틀이 마련된 것이다.

△남 교수=공동선언이 밑변이 되어 만들어진 협력 틀이 아시아 전체로 확산됐다. 아세안+3가 기능하게 된 것도 시작은 공동선언이었다. 실제로 98년 1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아세안+3에서 DJ가 동아시아 경제협력 비전그룹을 제시함으로써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가 처음으로 시작됐다.

△조 대기자=공동선언의 한계 내지 좌절됐던 상황을 살펴보자.

△양 교수=분명 공동선언은 동아시아의 협력구도를 마련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본격적인 다자구도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특히 한·일 간 현안을 풀어갈 수 있는 틀을 마련하지 못했다. 공동선언에도 위안부 등 역사문제를 거론하고 있으나 국내 시민단체와 피해자들이 요구한 내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쟁점화하지 못했다.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한·일 간 역사·영토 문제를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프레임을 짜지 못했다. 문제가 거론됐기에 해결되는 듯 보였을 뿐이었다. 나중에 해당 이슈가 악화됐을 때는 공동선언이 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남 교수=2005년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이름)의 날’을 지정하면서 공동선언은 한계에 직면했다. 북·일 관계도 평양 공동선언 이후 근근이 이어지다가 요코다 메구미씨 유골이 가짜라는 말이 나오면서 더 이상 굴러가지 않는 상황으로 가버렸다. 한국에서도 이명박정부 후반부터 한·일 관계가 급격하게 나빠졌는데 그 이면에는 공동선언을 소홀히 다룬 측면도 있었다. 일본에서도 오부치 총리와 다른 결을 가진 자민당 우파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공동선언의 위상은 위축됐다.

△조 대기자=일본은 2009년 민주당으로 정권교체, 즉 리버럴 쪽이 정권을 잡았는데, 한국에선 거꾸로 2008년 이후 보수정권이 들어서 공동선언 당시와 정반대의 구도가 등장했다. 이어 2012년 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양 교수=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견해차가 극대화됐던 시기다. 그 즈음부터 한·일 관계는 사법부 판결과 시민단체가 한·일 관계를 좌우하는 독립변수로서 부상하기 시작했다.

△남 교수=한국 시민사회의 일본에 대한 기대치도 변수로 작용했다.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양국 시민들 간에는 우호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일본 정부의 반응은 한국에 대해 냉랭했다는 점에 대한 실망감도 있었다.

△조 대기자=20년이 지난 지금 공동선언의 적용 가능성이 여전한지도 관심거리다.

△양 교수=20년 전에 비해 한·일 간 전략적 이익의 공유 수위는 많이 약해졌다. 양국을 결합시킬 수 있는 구속관계가 크게 약화돼 각자 독립적으로 움직이려고 한다.

△남 교수=그러나 조건은 변했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20년 전이나 같다. 한반도 위기관리와 새로운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숙제는 여전히 안고 있다. 98년엔 한·일 관계가 밑변으로 작동해 동아시아 협력구도를 유도했다면 올해는 남북 관계가 밑변으로 다시 시작하고 있다. 작은 삼각형을 완성시키려면 당연히 한·일 관계를 풀어야 한다.

△양 교수=구조적으로 볼 때 쉽지 않다. 98년엔 북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제어하자는 합의가 있었다. 지금은 한국이 주도하고 북한이 대응하면서 남북 쌍방이 주도하는 상황이다. 일본은 완전히 빠져 있고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는 미·중이다 보니 한·일 간 전략적 이익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태다.

△조 대기자=일본을 좀 더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게 아닌가. 문재인정부 대일정책은 너무 소극적인 것으로 비친다.

△남 교수=북·미 간 협상촉진에 집중해서 그런 측면도 있다고 본다. 어떻든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도 일본을 끌어들여야 한다.

△양 교수=어려운 문제다. 아베 총리의 체면이 걸린 화해치유재단은 해산이 불가피하다고 통보된 상태라서 일본 내에서 반발이 예상된다. 또 일본은 강제징용과 관련해 한국의 대법원 판결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남·북·일이 3자 축을 만드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인데 현실적으로 일본 외교는 그걸 수용할 만한 능력이 안 되는 것 같다.

△조 대기자=문재인정부는 대일정책에서 투 트랙을 강조한다. 역사·영토 문제는 그대로 놔두고 외교안보나 경제 협력 쪽에만 신경 쓰겠다는 말로 들린다.

△양 교수=일본 측은 투 트랙에서 역사·영토를 우위로 보고 우려하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는 대일정책 관리는 잘하고 있는 편인데 적극적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할 만한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조 대기자=아베 총리는 자민당 총재 3연임에 성공해 최근 4차 아베 내각을 출범시켰다. 한·일 관계나 북·일 관계에 미치는 여파는 없나.

△남 교수=중요한 것은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일본 국민들에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이해시키는 한국 정부의 노력이다. 일본 국민들에게 한반도 평화가 동아시아에서 갖는 의미, 한·일 관계의 의미를 설명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도 재협상 내지 무효화 요구는 하지 않는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 보다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일본 국민이 한국에 대해 적극적인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한반도 화해 프로세스에 일본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길 터다.

△양 교수=일본은 문재인정부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이뤄지고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성사되면 큰 이미지 개선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남 교수=북·일 관계는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하지만 지난달 유엔총회에서 아베 총리의 연설은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른 내용이었다. 그간은 압박이란 단어를 많이 썼는데 이번 연설에서는 압박 대신 대화하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변화의 조짐은 분명 있다.

△조 대기자=일본 국민에게 호소하자면 대통령이 직접 일본을 방문해 타운홀 미팅 같은 것을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아직 거론되고 있지 않다.

△양 교수=연내 일본 방문은 물리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북·미 협상문제, 김 위원장 서울 방문 등이 일단락되면 내년 상반기에는 가능할 것이다.

△남 교수=타이밍을 고려한다면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이후 멀지 않은 시기에 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일본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하는 기회를 활용했으면 좋겠다.

△조 대기자=마지막으로 공동선언 20주년 이후의 양국 행보에 대한 전망으로 오늘 좌담을 마무리하자. 문재인-아베 신공동선언은 가능하겠나.

△양 교수=문재인 정권은 한·일 관계를 잘 관리해 왔고 신뢰 구축을 위한 기반을 닦아 왔다. 역사 문제도 포함해서 한국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비극의 과거 100년이 희망의 미래 100년으로 바뀔 수 있도록 제2의 파트너십 선언을 한국이 먼저 제안했으면 한다.

△남 교수=공동선언엔 두 개의 씨앗이 담겨 있었다. 하나는 내용적인 씨앗인데 비핵 평화를 공유하는 관계로서 한·일 관계를 분명히 한 것이다. 또 하나는 방법적인 씨앗이다. 98년 한·일 선언, 2000년 남북 선언, 2002년 북·일 선언의 방식으로 남북 및 한·일 화해가 함께 간다는 점이다. 그 방법론이 이제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와 동아시아를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정리=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일본 게이오대 정치학 박사, 주요 저서로 ‘한일관계 50년의 성찰’(2017, 공저) 등이 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일본 도쿄대 국제정치학 박사, 주요 저서로 ‘기지국가의 탄생: 일본이 치른 한국전쟁’(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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