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의약분업 18년… 갈등 18년

툭하면 의사-약사 충돌… “시대 변화맞게 재평가 해보자”

의약분업 18년… 갈등 18년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표어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1980년 이전에 태어난 세대들에겐 뇌리에 박힐 만큼 익숙한 문구다. 정부는 2000년 7월 1일, ‘의약분업’을 도입하며 이 표어를 전면에 걸었다.

수천년 역사의 전통의학에서 내려온 상식과 관행을 깨기 위해서는 의사와 약사는 물론 국민의 의료이용행태도 변해야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한동 당시 국무총리 서리는 의약분업 시행 한 달 전인 6월 1일 특별담화문을 통해 의·약사를 포함해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했다.

아무런 제한 없이 모든 약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제도시행 후 필요한 약을 꼭 필요한 만큼만 먹어 오남용을 줄이고 더 나은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초기 비용이 더 들고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조제해야하는 국민의 불편함이 수반될 것이라고 봤다.

의료기관과 약국의 경영상 어려움과 불이익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실제 의료계는 6차례에 걸쳐, 약계도 1차례 의료기관과 약국의 문을 닫고 거리로 나와 장외시위를 벌이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속에서도 완전한 형태에 가까운 의약분업이 이뤄졌다.

문제는 도입전후로 의·약사를 대표한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들이 어렵사리 마련한 합의문도 수차례 깨지고 고쳐지며 최초 정부 계획과는 상당부분 다른 제도가 됐고, 우려했던 부작용이 곳곳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1차 평가에 따른 제도 수정이 이뤄졌음에도 최종 합의 과정에서 약속한 내용들이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거나 완전히 이행되지 못해 의·약계 간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최근 제도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누굴 위한 정책인가”… 국민이 반기지 않는 정책? = 제주도에 홀로 살고 있는 79세 강영채씨는 고질적인 허리와 무릎 통증으로 거동이 쉽지 않았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병원을 가 진통제와 관절치료를 받아야 한단다. 병원을 가지 않으면 못 산다고 할 만큼 고통스런 나날을 약으로 달래며 지내고 있다.

그는 “제대로 걷기도 힘든데 십수분을 나가 하루에 2∼3번 다니는 버스를 타고 중심가 병원을 들려야한다. 그마저도 병원에서 약을 바로 받지도 못하고 약국까지 가서 받아야 한다”면서 “옛날(의약분업 전)이 편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노인들만이라도 약을 병원에서 한 번에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는 비단 강 씨만의 주장은 아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제주도 한적한 곳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오재훈(43)씨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오 씨는 “의약분업 전의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현 상황만을 놓고 봐도 당연히 불편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DUR(Drug Utilization Review; 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이 갖춰져 있고 자동조제기가 약을 보다 정밀하게 포장할 수 있는 상황에서 식후 30분 후 복용하라는 반복적인 말을 들으러 약국에 간다는 것은 소모적일 뿐”이라며 현행 의약분업에 대한 불만과 평가를 통한 개선 필요성을 시사했다.

이 외에도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A씨를 포함해 세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많은 수의 시민들이 제도 시행 후 평가를 통한 개선이라는 당위적 측면에서 의약분업 재평가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일부에서는 의약분업 취지와 정책수립 목적에 대해 청취 후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동의한다고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의약분업 재평가 필요는 하지만, 가능할지는 의문= 당연하지만 의료계와 약계도 재평가 필요성에 동의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의약분업의 목적 중 항생제 사용빈도를 줄이고 제약산업의 연구개발이 확대되는 등의 긍정적 효과도 있었지만, 초기 합의된 처방목록공개 등이 여전히 지켜지지 않으며 약국의 의료기관 의존도가 높아지고,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며 냉정한 평가를 주문했다.

의사협회 고위관계자도 “우리나라 의약분업은 명분만을 내세운 여론화 과정과 목표만을 가지고 강제로 시행된 후 보완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정확하고 종합적인 성과평가는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조제료로 인한 가계부담이 급증하고 의약품 유통구조의 정상화 효과도 미미했다. 오남용 예방과 의약서비스 향상 효과도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의약계 모두 평가의 시기나 주체, 방향에 대해서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오히려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거나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직역 간 갈등의 골이 깊은데다 두 단체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나 방향이 서로 달라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현 의약분업 모델의 초안이 된 5.10 합의문을 이끌어낸 차흥봉 전 보건복지부 장관 또한 “당시 직역 간에 큰 충돌이 있었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안인데다 당시 관계자들이 아직 살아있어 냉정하고 이성적인 평가를 하기에는 조금 이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2030년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의약분업제도를 도입한 것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인 사건이며 성공이라고 본다. 하지만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고, 제도의 목표가 달성됐는지를 살펴볼 필요는 있다”며 “보건의료체계가 무너질 것 같았던 의료대란을 야기하고 건강보험 재정위기라는 커다란 충격을 안겼던 정책이다. 차분히 정리해볼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제도를 운영·관리·감시하고 있는 보건복지부 관계자 또한 사견을 전제로 “제도가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문제점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따져볼 수 있는 기회는 필요할 것 같다”면서도 “학문적인 평가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기에는 과거 갈등과 그로 인한 사회적 논의비용만큼의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기에 쉽지 않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시대변화 발맞춘 제도개선 필요성 대두= 한편,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 고령사회로의 조기 진입, 떨어지는 출산율과 저출산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지각변동 등 다변화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생존을 위한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보건의료 또한 마찬가지다.

당장 지금의 의료체계를 뒤흔들 원격의료 혹은 비대면 진료에 대한 세계적 흐름을 등에 업은 논리가 의료계를 중심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이들의 주장을 강하게 밀어내고 있다. 면역항암제를 중심으로 치료제의 가격은 일개 개인 혹은 한 가정이 부담하기 힘든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는데다 건강보험 등의 재정은 조만간 바닥날 것이라는 전망이 보편적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건강보험을 유지하고 보건의료체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의약분업 재평가 또한 일환이다.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는 “의약분업은 굉장히 경직된 제도”라며 “원격의료에 대한 시대적 요구나 거동불편환자 혹은 만성질환환자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유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의와 약의 분리로 인해 의료비가 급증했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여러 가지 요인이 섞여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의료비의 상당부분은 약이 문제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술 등 제공되는 서비스의 비용이 크게 늘기는 어려운 구조지만, 면역항암제 등의 약제가 환자의 어려움을 뒤로하고 높은 가격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를 포함해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환자의 어려움을 정책당국이 논리만으로 막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어려움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성분명처방 혹은 대체조제 등 복제약(제네릭)의 문제가 원활해져야 약에 의한 재정적 부담 등을 조금이나마 조절하고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폭넓은 차원에서의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평가필요성을 언급했다.

오준엽 쿠키뉴스 기자 oz@kukinews.com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