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쌓다가, 스펙 때문에… 장기 취준생 ‘악순환의 시작’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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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졸자 늘고 좋은 직장 선호 탓, 휴학·졸업 유예 등 다반사
살벌한 경쟁 속 사회진출 늦어, 결혼 지연 출산 저하 ‘도미노’


치열한 취업전쟁에서 ‘지방대 출신’이라는 명패는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저마다 화려한 스펙(학력, 학점, 어학점수, 인턴 경력 등)을 뽐내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어학연수, 해외 기업 인턴에 2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2013년 지방의 4년제 사립대를 졸업한 A씨(31)는 호주에서 1년 어학연수를 하고 미국계 은행에서 1년간 인턴 생활을 했다. 지난해 귀국하자마자 6개월 동안 공기업 인턴 경험도 쌓았다. 입사지원서의 ‘빈칸’을 제법 탄탄하게 채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담했다. 대기업 입사시험에서 번번이 미끄러졌다. 경쟁자와 비교하면 A씨 스펙은 평범했다고 한다.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 문을 두드렸지만 스펙이 또 발목을 잡았다. 최종 면접까지 올라간 A씨가 들은 말은 “여기서 일하기에 스펙이 화려하다. 대충 다니다가 더 큰 회사로 옮기려는 것 아니냐”였다. A씨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의 명문대를 나온다고 사정이 나은 것도 아니다. 초등학교까지 독일에 있다 중·고교와 대학을 한국에서 마친 B씨(37)는 아직도 무직이다. 졸업을 미뤄가며 준비한 국가정보원 입사시험에서 두 차례 떨어졌다. 일반 기업으로 눈을 돌리니 나이가 많고 경험이 없다는 게 걸림돌이 됐다. 다시 방향을 ‘공시’(공무원시험)로 돌렸지만 백수 탈출은 기약이 없다. B씨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로 내몰렸다.

한국 사회의 높은 교육열, 학벌지상주의가 ‘청년층 취업절벽’과 만혼, 저출산에 불을 붙이고 있다. 대학 졸업장은 기본이고 각종 자격증과 해외연수 경험까지 갖춰야만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왜곡된 현실이 ‘부작용 도미노’를 낳고 있다. 교육 제도는 학벌지상주의 신화에 맞춰 변화해 왔고 공무원·공기업·민간기업 입사시험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대학 졸업 후 취업 준비가 길어지는 현상은 결혼을 늦추고 출산율을 떨어뜨리고 있다.

7일 한국노동연구원의 통계청 경제활동 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대학을 졸업한 여성 4명 중 1명은 스펙 쌓기 등을 위해 휴학을 한다. 남성의 경우 병역도 걸려 있다. 29세 이전에 첫 취업이 쉽지 않은 구조가 형성됐다. 전체 고용률은 꾸준히 60% 안팎을 유지하는데 청년층(15∼29세) 고용률이 40% 초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소득이 없으니 결혼은 늦어진다. 첫 아이 출산 연령은 2010년 30세를 넘은 뒤 꾸준히 오름세다.

세종=신준섭 정현수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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