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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손수호] 백두산 등정, 관광인가 체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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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제3차 남북 정상회담에는 공식수행원 14명 외에 52명의 특별수행원이 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수 알리, 시인 안도현, 축구감독 차범근, 유홍준 교수 등 각계각층을 망라했다. 이들은 이름과 달리 특별한 미션이 없어 여러 사람과 인사를 나누면서 남북 관계의 변화와 미래를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급기야 두 정상의 백두산 등정에도 따라가는 기회까지 얻었고, 글과 사진을 많이 남겼다.

이들의 백두산 등정은 어떤 성격일까. 공직자가 아니니 공무는 아닌데, 나랏돈을 썼으니 외유인가. 대통령 수행 자체를 통치행위의 연장으로 봐야 하나.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얻어먹은 게 향응인가. 여럿이 어울려 이곳저곳을 둘러봤으니 유람 혹은 관광인지도 모른다.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만 보았으니 체험인가. 경험을 통해 각자 생각의 폭을 넓히고 상대에 대해 인식을 새롭게 했으면 교양일 수도 있다.

당시 알리가 백두산에서 부른 ‘아리랑’을 들으면서 올 4월 불명예 퇴진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경우가 떠올랐다. 당시 이슈의 핵심은 부적절한 해외출장이었다. 언론과 야권이 문제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충칭(重慶) 관광’이 도마에 올랐다. 김 전 원장은 “충칭에서는 출장 목적에 맞는 공식 일정만 소화했다”고 밝히자 반대편에서 자료를 들추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등 관광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공세를 펼쳤다.

김기식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피감기관의 예산으로 외유성 여행을 다녀온 것은 잘못이다. 다만 임시정부 유적지를 둘러본 행위를 비난하는 일각의 시각이 놀라웠을 따름이다. 충칭의 연화지에 자리한 임시정부 청사는 대한민국의 뿌리나 다름없다. 김구 주석이 판공실에서 집무하던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다. 지난해 말에 문재인 대통령도 방문해 각별한 소회를 피력했다. 충칭을 찾은 현역 국회의원이 이곳을 찾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나. ‘관광’은 그렇게 위신을 잃고 추락했다.

예전에 아동 구호 및 지원사업을 펼치는 NGO와 함께 네팔에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후원금으로 활동하는 그들의 자세는 놀라울 정도로 반듯했으며 백 원 한 장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직원들은 짐꾼 역할에서 통역까지 못하는 것이 없는 맥가이버들이었다. 다만 일정에 너무 엄격했다. 그렇게 자주 네팔을 오가면서도 카트만두의 중심인 더르바르 광장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짬을 내 내가 억지로 데려간 적이 있는데, 그들은 사원을 둘러보는 내내 불편해했다. “이렇게 관광을 즐기면 안 되는데…”라는 표정으로.

관광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낙후돼 있다. 아직도 사치스러운 소비로 생각하거나, 유흥과 구분하지 못하는 몽매에 빠져 있다. 공직자의 출장에 관광이 끼면 큰일이라도 난 듯 비난 일색이다. 물론 관광 일변도의 일정은 안 된다. 온전한 관광은 자기 돈 내고 가는 게 맞다. 그러나 출장지의 스케줄이란 게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때 틈을 이용해 주변의 명승을 잠깐씩 둘러보면 좀 어떤가. 서울에 출장 온 외국인이 고궁에서 전통을 생각하고, 유람선에서 한강의 기적을 궁리하는 것이 소비인가 생산인가. 오히려 숨기지 말고 일정에 넣어 당당하게 관광하는 게 낫다.

오늘날 관광은 학습과 체험을 넘어 교양의 영역에 닿아 있다. 직립하는 인간은 늘 떠나기를 꿈꾼다. 간혹 여행과 관광을 구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일반 국민의 눈에는 그게 그거다. 그런데도 여행은 고상한 문화행위로 치켜세우면서 관광은 단순한 즐기기 혹은 놀이로 폄하한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읽는 행위가 여행이고 관광이다. 노동 없는 미래에 관광이 인류 최후의 미션으로 남을 수도 있다. 덤이 아니라 본질이 되는 것이다. 한 해에 국민 2000만명이 국경을 넘는 시대에 관광에 대한 생각의 경계도 좀 넓혀야겠다.

손수호(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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