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상근] 제주 괸당문화를 느끼다 기사의 사진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제주 출신 선배가 빙부상을 당했다는 내용이다. 선배는 일찍이 제주도를 출향하여 서울에서 살아온 터라 혹여 상갓집이 너무 조용할까 걱정하며 여러 지인과 함께 급하게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에는 ‘괸당’이라고 하는 섬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고 한다. 모임에서 가끔 ‘괸당’이라는 말이 회자되긴 했지만 정확히 그 의미를 알지는 못했다. 사전적 의미로 협의적으로는 친척, 광의적으로는 이웃을 의미하는 제주 방언이다. 하지만 여전히 와 닿지는 않는다. 과연 괸당이 무엇일까.

같은 제주 출신의 다른 선배가 공항에서 준비한 렌터카를 타고 아침식사를 위해 인터넷에서 유명 맛집을 찾아갔다. 그 선배는 제주 사투리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다른 식당으로 차를 돌렸다. 그곳 종업원들은 제주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외지인들이었고 주인장은 없었다. 다시 10여분 차를 몰고 수협 어판장 주변에 지역민에게 입소문이 난 식당에서 제주갈치국과 고등어회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서울 여느 유명 식당 못지않은 맛이었다. 가격도 착했고 갈치는 전혀 비리지 않아서 육지와 전혀 다른 갈치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주방장은 현지인이었고 제주 방언에 능숙했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5·16도로를 달려 서귀포 장례식장에는 점심 무렵에 도착했다. 예상과 달리 상갓집에는 조문객으로 북적였고, 우리 일행도 입관을 마친 상주와 인사하고 조문도 마쳤다. 특이한 점은 제주에서는 부의금을 함에 직접 넣기도 하지만 보통은 상주에게 직접 전달한다고 했다. 여기에서는 그게 상주에 대한 예의라고 선배가 귓속말로 조용히 일러주었다. 합리적이기도 하면서 조금은 낯선 풍경에 어색함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고 예를 표했다.

일행들은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도 상갓집에서 제공되는 음식과 술로 저녁까지 있다가 비행기 시간에 맞춰 제주공항으로 출발했다. 대접을 받는 도중 몇 가지 재미있는 일을 경험했다. 상갓집에서 육개장 대신 미역국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바다를 접한 제주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연이어 문상에 대한 답례품으로 생라면과 음료수가 나왔고 ‘이런 것도 주네?’라며 조금 의아한 마음을 가지는 찰나 팥죽이 나왔다. 팥죽을 먹고 나니 또 귤이 나왔고 출발 전에는 찐빵까지 맛을 보았다. 아마 계속 있었다면 정말 배가 터져라 대접 받았을 것이다.

왜 이리 많은 음식이 나오느냐고 제주 현지 지인에게 물었다. 지인은 제주가 예부터 삶이 척박해 집안 대소사가 생기면 이웃들이 상부상조하는 풍습인 계문화가 유달리 발전되었다고 했다. 팥죽의 경우는 사돈댁에서 망자의 저승길에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 쒀온다고 했다.

아마도 답례품인 라면과 음료수, 도중의 간식으로 들어온 귤과 찐빵은 상주들의 계원들에 의해 제공된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리고 조문객들은 장례기간에 상주와 같이 슬퍼해주기 위해 한 번이 아닌 몇 번이고 장례식장을 방문한다고 한다.

그동안 제주를 방문하며 괸당문화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일련의 조그마한 사건들이 제주의 괸당문화를 한층 성숙하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괸당문화는 척박하고 좁은 섬에서 서로에게 각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의지하며 황량한 섬에서 살아가는 제주민 나름대로의 생존 방식이었던 것이다.

괸당문화가 제주를 넘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작금의 삭막한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 되어 함께했던 모습이 익숙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가 갈등과 혐오로 아파하고 있다. 눈부신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배금주의와 개인주의로 이제는 더 이상 이웃사촌도, 따뜻한 주변의 손길도 찾아보기 어렵다. 괸당, 어쩌면 우리가 다시 찾고 싶은 그 무엇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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