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의 기적] “병든 엄마·네 명 동생 돌보는 아홉 살 소녀, 꿈만은 잃지 않게 해주소서”

에스와티니(옛 스와질란드)를 가다

[밀알의 기적] “병든 엄마·네 명 동생 돌보는 아홉 살 소녀, 꿈만은 잃지 않게 해주소서” 기사의 사진
춘천 석사감리교회 손학균 목사(왼쪽)가 지난달 18일 에스와티니 마들란감피시에서 아홉 살 소녀 러브니스 음케보의 손을 잡고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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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 석사감리교회 손학균 목사가 아홉 살 소녀 러브니스 음케보의 작고 검은 두 손을 꼭 쥐었다. 그리고 기도를 시작했다. 뒤편 나무 아래 가족들도 황토바닥에 앉아 함께 눈을 감았다.

“하나님, 의사가 되고 싶다는 러브니스를 축복해 주시옵소서. 가족으로부터 시작해 주변의 아파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손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네 명의 동생을 돌봐야 하고 아픈 엄마를 돌보는 딸의 역할도 해야 합니다. 이 아이가 가정을 지키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만 마음속 꿈을 잃지 않게 해주옵소서. 환경이 아무리 열악해도 이 아이를 친히 키워주시고 인도해주시고 힘이 돼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국어에 이어 영어 그리고 현지어인 시스와티어로 한 문장씩 옮겨야 했지만 기도에 집중하다 보니 한국말로만 진행됐다. 무슨 말인지 알기 힘든 러브니스는 그럼에도 기도 중간 동생들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곤 눈물을 떨궜다. 언어가 아닌 음성과 몸짓으로도 내용을 알아차렸다. 기도 후 손 목사는 영어로 “지저스 러브스 유(Jesus loves you)”라고 말했다. 러브니스는 “예”라고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국민일보와 한국월드비전이 함께한 ‘밀알의 기적 캠페인’ 모니터링단은 지난달 18∼20일 아프리카 남부에 위치한 에스와티니를 방문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태국 방콕, 케냐 나이로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를 거친 뒤에야 에스와티니 제1의 도시 만지니의 공항에 내린 멀고먼 비행 여정이었다. 공항에서 또다시 차를 타고 1시간30분을 달려 찾아간 곳은 마들란감피시란 이름의 시골 마을이었다.

한국에선 1970년대에 사라진 초가지붕 아래서 러브니스는 폐결핵에 걸려 8년째 투병 중인 엄마(38)와 시흘레(8) 레오(7) 본기스와(7) 아이필레(3) 네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아빠는 이들을 버리고 자취를 감췄다. 먹을 것은 엄마가 지역 병원에서 받아오는 음식과 친척들의 도움으로 마련한다. 주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면 한 달에 40∼50달러(5만∼6만원)를 벌 수 있지만 오랜 투병으로 서 있기조차 힘든 엄마를 써주는 곳이 없다.

초등학교 2학년인 러브니스는 집에서 40분을 걸어야 하는 강에서 매일 물을 떠와야 한다. 이걸 끓여 식수로 삼는다. 러브니스가 물을 떠오는 여정을 따라갔다. 익숙한 솜씨로 머리에 물을 이고 걷는 러브니스 주변으로는 주민들이 강변에서 빨래를 하고 또 세차를 했다. 맨발로 걷느라 상처투성이인 러브니스의 발이 안타까워 엄마에게 물었다. 신발 신어본 적은 있느냐고. 엄마는 “올해 2월 이모가 사줬는데 그새 발이 커서 맞지 않는다”고 힘없이 답했다.

마을의 음랑구야쿠카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아이들이 뛰쳐나와 박수를 치고 발을 구르며 노래를 불렀다. 12명 선생님이 12개 교실에서 353명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곳은 1920년 설립됐다. 98년 역사의 학교라곤 믿기지 않았다. 울타리가 없어 방목하는 소와 염소들이 드나들며 학교 마당에 똥을 뿌려 놓았다. 창문은 깨져 있고 교실 바닥엔 금이 가 있다. 시급한 것은 역시 물 문제 해결이었다. 학교 급식실에서 요리할 때 강물을 길어다 사용하는데 동물들도 그곳에서 물을 마시기에 아이들의 건강이 위협받는다.

월드비전은 에스와티니에 한 해 200만 달러 안팎의 예산을 지원한다. 식수 및 위생사업이 첫째이고 아동후원과 소득증대사업이 병행된다. 아이들에게 양질의 초등교육을 제공하고 영양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 전략목표 1번과 2번이다. 마들란감피시에 총 3700명, 이웃한 음키웨니에도 3700명, 남쪽 솜통고에는 2500명의 아이들이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을 받고 있다.

차량으로 다시 1시간을 달려 이번에는 월드비전이 지원한 망게드라 초등학교를 찾았다. 월드비전은 이 학교에 태양열판과 우물을 설치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먹고 마실 물을 얻을 수 있었다.

은코시나티 음콘타 교장은 빌립보서 2장 3절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는 말씀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밝혔다. 이 학교 375명 학생 가운데 137명이 월드비전 결연사업을 통해 후원을 받고 있다며 감사를 표했다. 그는 “월드비전의 도움으로 식수 위생사업을 할 수 있었고 이 물을 통해 더 깨끗한 생활이 가능해졌다”고 덧붙였다. 물은 아프리카에서 생명이고 사랑이었다.

▒ 에스와티니는 어떤 나라
빈부 격차 극심… 가난 탓 성인 3분의 1이 에이즈에 감염


에스와티니(eSwatini)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모잠비크에 국경을 맞댄 내륙 국가이다. 예전 이름은 스와질란드(Swaziland)였는데 올해 4월 에스와티니 왕국으로 개명했다.

에스와티니는 ‘스와지 민족의 땅’이란 뜻이다. 월드비전 현지 관계자는 “스와지족은 친절하고 우호적이며, 아이들은 부끄럼을 많이 타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국립국어원은 지난 6월 외래어표기법 심의 끝에 ‘이스와티니’가 아닌 ‘에스와티니’로 표기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스와질란드 이름을 버린 이유는 스위스(Switzerland)와 헷갈리기 때문이다. 에스와티니 국왕 음스와티 3세(50)는 “해외에 나가면 많은 사람이 스와질란드를 스위처란드로 착각한다”면서 “내 조국이 정당한 이름을 갖길 원한다”며 개명을 단행했다.

절대 군주인 음스와티 3세는 붉은 깃털 머리 장식을 하고 있는데, 이는 국왕의 위엄을 나타낸다. 지난달 중국 시진핑 주석이 아프리카 전체 54개국 가운데 53개국 정상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초청해 600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약속했을 때도 유일하게 빠진 나라가 에스와티니였다. 음스와티 3세는 중국의 압박에도 “대만과 수교를 유지한다”고 버티고 있다.

에스와티니는 실제 스위스처럼 아름답다. 가장 번화한 도시인 만지니 외곽에 위치한 밀웨인 국립공원에는 스위스 체르마트에 있는 마터호른과 꼭 닮은 봉우리가 있다. 마터호른은 할리우드 영화 파라마운트사 로고로 유명한 삼각형 모양의 봉우리다. 이 봉우리가 굽어보는 곳에 미국대사관과 호화 주거단지가 입주해 있다. 전체 인구의 10%가 왕국의 부를 독점하는 등 빈부 격차가 심하다.

에스와티니는 또 에이즈 감염률이 매우 높다. 성인 3분의 1 이상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역시 가난 때문이다. 월드비전 관계자는 “60% 넘는 실업률로 국내보다 남아공에 가서 일자리를 구하다 보니 외지에서 바이러스를 옮겨오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마들란감피시·만지니(에스와티니)=글·사진 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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