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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이 사람] 대를 이어 ‘나누는 기쁨’ 누린 세브란스 가문

세브란스병원 탄생 주역 세브란스와 에비슨

[발굴! 이 사람] 대를 이어 ‘나누는 기쁨’ 누린 세브란스 가문 기사의 사진
루이스 H 세브란스가 1907년 9월 서울에 세워진 ‘세브란스 기념병원’을 방문해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그림. 신축병원을 보고 크게 만족한 세브란스는 의대생 교육 시설이 없는 걸 알고 3만 달러를 추가로 기부했다. 의대 건물은 1913년 완공됐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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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4월 21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세계 에큐메니컬 선교사대회 중 한 선교사가 무대에 올랐다. 캐나다인 의사로 조선에서 사역 중이던 올리버 에비슨(1860∼1956)이었다. 그가 꺼낸 이야기는 조선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에 대한 것이었다.

제중원이 설립된 건 우연한 사건 때문이었다. 1884년 발생한 갑신정변 때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미국 북장로회 의료선교사이던 호러스 알렌이 외과수술로 살려낸 게 결정적 계기였다. 고종은 서양의술의 탁월함에 놀라 병원 개원을 명했고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안정적으로 40명 이상을 수용할 병원이 필요합니다. 조선은 선교사들이 활동하기에 제약이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의료선교만큼은 제재가 없습니다. 복음 실은 의술을 펼치려면 우선 제대로 된 병원이….”

보고가 끝나자 백발의 신사가 무대 앞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루이스 H 세브란스(1838∼1913)였다. ‘스탠더드 오일’을 설립한 대주주로 ‘석유왕’으로 불리던 인물이었다. “병원이 필요하시다고요. 마침 선교지 어딘가에 병원을 짓기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장로이기도 했던 그는 늦은 시간까지 에비슨과 제중원 증축에 대해 대화했다. 얼마 뒤 1만 달러의 거금을 전달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훨씬 더 큽니다.” 미국의 온라인 미디어인 ‘비주얼 캐피털리즘’이 지난해 발표한 ‘연도별 달러가치’ 자료를 보면 1900년 1달러는 유명 브랜드의 신발 한 켤레를 살 수 있을 정도의 가치였다. 신발 가격을 200달러로 환산할 경우 당시 1만 달러는 지금 가치로 200만 달러(약 22억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공사는 1902년 시작됐다. 현재 서울 중구 통일로의 연세대 재단빌딩이 있는 자리가 병원 부지로 낙점됐다. 부지 구입을 위한 기금(5000달러)도 세브란스가 쾌척했다. 1904년 9월 23일 지상 2층 지하 1층의 서양식 병원이 완공됐고 ‘세브란스 기념병원’이라고 이름 붙였다. 세브란스는 1907년 딱 한 차례 병원을 찾았을 뿐 운영에 관여하지 않고 후원만 했다. 의대 건립의 종잣돈으로 사용된 3만 달러도 그의 손을 거쳤다. 1913년 세상을 떠난 세브란스는 “재산을 쌓아두지 말라. 반드시 필요한 곳에 정성을 다해 나눠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지에 따라 아들 존 세브란스도 1934년 숨질 때까지 병원에 12만4500달러를 기부했다. 이 사실도 시간이 지나서야 알려졌다. 병원은 미국 북장로회가 후원자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2005년 병원이 직접 조사한 결과 존 세브란스가 만든 ‘세브란스 펀드’가 자금의 출처로 밝혀졌다. 대를 이어 ‘주는 기쁨’을 누린 것이다. 숭고한 가치는 지금의 세브란스병원으로도 이어졌다. 이 병원이 매년 의료시설이 미비한 나라들로 최고의 의료진을 파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눌수록 커지는 기쁨,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 아닐까.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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