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상만 알릴 수 있다면… 좌고우면 안해” 기사의 사진
조선 후기 문인화가 이인상 연구에 20년의 시간을 쏟아부은 박희병 교수. 그에게 이인상의 매력을 묻자 “세상이 인정하건 않건 간에 꿋꿋하게 자기 기준에 따라 살았던 ‘골기(骨氣)있는 인간’”이라고 말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연구실에만 박혀 살아서 몸에서 곰팡내가 날 거예요.”

지난달 말 찾아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 책꽂이에 마저 꽂지 못한 책들이 바닥에 수북이 쌓인 가운데 테이블 위에 놓인 ‘벽돌책’ 2권을 바라보며 박희병(62)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돌베개 출판사에서 최근 나온 연구서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의 1권 회화 편과 2권 서예 편이다. 각각 1000쪽이 넘는 노작이다.

이 책은 몇 가지 측면에서 학계의 뉴스가 됐다. 우선 조선시대 서화에 관한 비평과 해석을 미술사학자가 아닌 국문학자가 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초고 작성에 3년, 교정에 3년, 출판 작업에 3년 등 10년 가까운 세월을 바쳤다는 점이다. 인기와 유행을 좇아 책이 뚝딱 나오는 시대에 보기 드문 학문적 태도다. 박 교수는 “이인상만 알아주면 된다는 생각으로 좌고우면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조선 숙종 때의 문인화가 이인상(1710∼1760)과 함께한 인연은 박 교수가 42세 때인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집 ‘능호집(凌壺集)’을 번역한 것이 시작이다. 문인화가인 이인상의 서화를 다루지 않고서는 사상가로서의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인상의 서화를 찾아 연구하다가 그의 중장년이 흘러갔다. 책에선 회화 64점, 서예 127점과 함께 전각도 다룬다.

미술사학자들의 영토에 거침없이 들어간 그는 통합 인문학적인 학문 태도를 강조한다. “자기 영역만 해서는 새로운 시대의 물음에 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한학 지식은 엄청난 무기가 돼 미술계의 정설이 된 주장들을 반박하고 오류를 거침없이 지적한다. 이인상의 말기작으로 알려진 ‘병국도(炳菊圖·병든 국화 그림)’를 관지(그림 속 글씨)에 쓰인 지명 ‘남계(南溪)’를 근거로 초기작이라고 뒤엎은 것이 그런 예이다. 능호집의 초고인 ‘뇌상관고(雷象觀藁)’를 구해 일일이 검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뇌상관고에는 이인상이 23세 무렵 남계에 살았던 것으로 나와 있다.

한자 지식의 부족이 어이없는 해석을 낳은 오류도 자주 지적된다.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를 ‘송변관폭도(松邊觀瀑圖)’로 바꾸는 등 제목을 수정한 경우도 많다. ‘일모장강도(日暮長江圖)’는 과감히 위작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한문 독해의 기초를 아주 높이 쌓지 않으면 한국학 연구를 할 수 없다”며 “가혹한 훈련을 더 해야 고담준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책에는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등 몇몇 미술사학자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그분들이 그만큼 연구를 했으니 언급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그들의 학문에 빚지고 있다”면서 “특히 유 교수는 ‘화인열전’을 통해 이인상을 대중에게 알린 공이 크다”고 강조했다.

책은 또 ‘진경산수’라는 용어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인상의 작품 세계를 ‘본국산수’로 정의하고, 서얼 출신이라는 전기적 입장에 함몰돼 그가 속했던 ‘단호그룹’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미술사학계의 반응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