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관료들은 옷을 벗지 않는다, 전관으로 변신할 뿐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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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상> 로펌의, 로펌에 의한, 로펌을 위한
<중> 대형회계법인의 ‘숨겨진 노다지’
<하> 로비 관행, 이대론 안 된다


관료, 그들은 옷을 벗지 않는다. 전관(前官)이라는 이름으로 변신할 뿐이다. 대형 법무·회계법인은 수억원부터 수십억원까지의 연봉을 주고 전관들을 모셔온다. 전문성보다는 그들이 가진 정·관계 인맥에 주목해서다. 과징금과 세금을 부과하는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조세심판원 출신들은 ‘특별대우’를 받는다. 이들은 ‘로비’라는 말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지만 마땅히 대체할 단어가 없는 게 현실이다. 대형 법무·회계법인의 전관 스카우트와 로비 실태, 윤리의식 강화를 위한 대안을 3회에 걸쳐 보도한다.

6대 대형 법무법인(로펌)이 공개적으로 밝히는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직원은 현재 51명이다. 이들 로펌의 공정거래 사건 담당 직원의 11.3% 수준이다. 다만 대형 로펌들이 공개하지 않는 인력에다 중·소형 로펌까지 감안하면 법률서비스 시장에서 활동 중인 공정위 출신 ‘전관(前官)’은 100명을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관들이 공정위 재직 시절 맡았던 직책은 공정거래위원장부터 7급 조사관까지 다양하다.

대형 로펌의 ‘전관 스카우트’는 알음알음으로 이뤄진다. 10일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최근 5년간 공정위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현황을 보면 2명만이 심사를 신청해 통과된 뒤 대형 로펌에 취업했다. 하지만 이 기간에 6대 대형 로펌에 취업한 공정위 퇴직공직자는 12명이나 된다. 취업심사 제외 대상인 5급 이하나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퇴직자, 퇴직 후 3년이 지난 고위공직자 등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정적으로 이뤄지는 취업심사도 형식적으로 이뤄진다. 퇴직 직전에 핵심 총괄과장직을 맡았는데도 공정위에선 “이 과의 업무는 해당 법무법인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취업 확인서를 써주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대형 로펌들은 최고 수십억원에 이르는 연봉을 주면서 ‘공정위 전관’을 뽑는 이유가 뭘까. 공정거래 사건과 관련한 기업들의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저마다 사내 변호사로 구성된 법무팀을 보유하지만 공정위 조사가 들어오면 어김없이 대형 로펌을 찾는다. 전관을 활용한 대형 로펌의 ‘시스템’이 그만큼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 로펌들은 공정위 출신을 영입할 때 고객인 기업들에 이를 선전한다. 겉으로는 ‘법률서비스 역량 강화’라고 알리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전관을 통한 로비 능력 강화’를 홍보하는 것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가 들어오면 대형 로펌은 전관의 정보력과 로비 능력을 은근히 강조하며 접근한다. 기업들도 해당 로펌에 전관으로 누가 있는지 유심히 살펴본 뒤 사건을 맡길지를 결정한다”고 전했다.

한 대형 로펌의 과징금 감경 이의신청 현황을 보면 ‘전관의 힘’을 가늠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 김선동 의원실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 로펌은 2012∼2014년 공정위에 과징금 이의신청을 내서 성공한 사례가 1건도 없었다. 이 로펌의 실적은 공정위에서 ‘에이스’로 불렸던 전관을 영입한 직후인 2015년에 확 달라진다. 그해 5개 사건에 부과된 과징금 146억원 가운데 81억원을 깎는 데 성공했다. ‘전관예우’가 작용했다고 보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대형 로펌의 로비 의혹은 ‘성역’으로 남아 있다. 검찰은 지난 8월 공정위 퇴직자의 불법취업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 수사대상은 16개 대기업에 불법적으로 취직한 18명의 퇴직자였다. 검찰은 공정위에서 퇴직자들을 기업에 취직시키고, 기업들은 전관을 통해 공정위에 로비하는 ‘공생관계’를 의심하고 있다.

수사대상에서 대형 로펌에 취직한 퇴직자는 빠진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전관예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검찰이 대형 로펌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대형 로펌의 공정거래팀에는 검찰 출신 인사들도 대거 포진해 있다.

대형 로펌은 공정위가 취업 청탁을 하지 않아도 ‘잘하는 선수’를 알아서 뽑아간다. 이 때문에 로비 의혹의 본질은 기업이 ‘보험용’으로 뽑은 전관이 아니라 로펌에 ‘뽑혀 간’ 전관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으로 간 공정위 퇴직자들은 통상 2년이 지나면 재계약을 못한다”면서 “검찰이 핵심을 잘못 짚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공정위와 로펌의 은밀한 공생관계를 끊지 않는 한 공정위의 법 집행이 정당성을 갖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세종=이성규 정현수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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