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를 위한 찰떡 공조를 강조하던 한국과 미국 사이에 불협화음이 나타나고 있다. 판문점 선언과 평양 선언을 바탕으로 남북 관계에 속도를 내려는 한국과 이를 불편하게 보는 미국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엇박자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북한의 가시적이고 실천적인 비핵화 조치가 없음에도 한국 정부가 대북 제재 해제를 검토하는 등 너무 앞서간다고 불만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달 강경화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 남북 철도·군사 합의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일까지 빚어졌다. 나중에 정정하기는 했으나 ‘5·24 대북 제재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강 장관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승인 없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미국의 속도에 맞추라는 요구다.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가동 중단, 5·24 조치는 국제사회 대북 제재와 상관없이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취한 제재 조치다. 그렇다고 남북 관계가 이전 정부에 비해 개선됐다고 해서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 등 북한의 선제적 조치 없이 일방적으로 해제할 사안은 아니다. 더욱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대북 제재가 여전히 유효한 상황에서 여권에서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를 넘어 백두산 관광 얘기까지 거론하는 것은 급해도 너무 급하다. 독자 제재 조치를 해제한다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유효한 현 여건 하에서는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 텐데도 정부와 여당이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 입장은 확고하다. 비핵화가 선행돼야 대북 제재를 완화하겠다는 거다. 남한만 예외를 인정할 경우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구멍이 숭숭 뚫리게 된다. 수순이 중요하다. 지금은 인도적 지원이나 문화·체육 교류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분야에 우선순위를 두고 남북 관계를 한 발짝 한 발짝 진전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여건이 조성될 때를 대비해 독자 제재 해제 준비는 하되 서두르지 말라는 얘기다. 대북 제재 해제는 비핵화 작업이 본궤도에 오른 뒤 검토해도 늦지 않다. 빈틈없는 한·미 공조가 절실하다. 그래야 북한의 오판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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