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조세심판청구 절차가 전관 로비 키운다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글 싣는 순서
<상> 로펌의, 로펌에 의한, 로펌을 위한
<중> 대형회계법인의 ‘숨겨진 노다지’
<하> 로비 관행, 이대론 안 된다

사건 배정되면 전관이 전화… 심판관이 제대로 판단해도
불투명한 ‘행정실 검토’가 다시 로비 통로로 이용돼
국세청 국세 심사는 참석한 민간위원조차 결과를 몰라
재정특위, 절차 일원화 추진… 로비 근절 논의는 지지부진

국세청의 과세 처분이 부당할 때 납세자가 취할 수 있는 조세불복 경로는 3가지다. 국세청에 심사를 청구하거나 조세심판원에 이를 청구할 수 있다. 또 감사원에 심사청구를 넣는 방법도 있다. 이 셋 가운데 하나를 거쳐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물론 조세불복 청구가 받아들여지면 국세청은 곧바로 과세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 조세불복 절차는 과세 취소를 위한 1심 소송이자 최종심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는 셈이다.

조세불복 청구는 한 해 평균 8000여건 이뤄지는데 이 가운데 90% 이상은 국무총리실 산하 조세심판원이 맡는다. 조세심판원에 대형 회계법인의 로비가 집중되는 이유다.

한 전직 심판관이 국민일보에 밝힌 회계법인의 전관을 통한 로비 행태는 노골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는 11일 “대형 회계법인에 속한 기획재정부 세제실과 국세청, 조세심판원 출신 고위 전관들은 사건이 배정되면 어김없이 전화를 해온다. 단순한 논리 설명이 아니라 청탁 수준이었다”고 폭로했다. 이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전화를 받지 않자 심판원 안팎으로 ‘전문가가 아닌 X이 와서 심판을 망치고 있다’는 험담이 돌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다 조세심판원에만 있는 ‘행정실 내부검토’라는 절차가 다시 로비 통로로 이용된다. 조세심판원 한 관계자는 “수백만원의 소액사건 경우 행정실로부터 곧바로 OK 사인이 떨어지지만 고액 사건은 이유 없이 결정이 늦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전했다. 행정실 내부검토 기한에 대한 규정도 없다. 심판부의 결정은 최종 효력이 없고, 불투명한 행정실 내부검토가 사실상 최종 심판인 셈이다. 이런 ‘통행세’ 관행은 지난 4월 안택순 원장이 취임하면서부터 내부자정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의 국세심사 역시 ‘깜깜이’로 이뤄진다. 6명의 민간위원과 5명의 국세청 간부가 심사를 하는데 참석한 민간위원조차 심사 결과를 알 수 없는 구조다. 민간위원이 누구인지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런 과세 로비의 밑바탕에는 세정당국 출신의 ‘그들만의 리그’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과세 등 정부 내 세무 분야는 일반 공무원이 접근하기 힘든 분야다. 2만여명의 세무공무원은 일반 공무원보다 끈끈한 선후배 관계를 자랑한다. 조세심판원 관계자는 “세정당국 관료들은 조세심판원을 자기들 조직이라 생각한다. 그들만의 한통속 문화가 없어지지 않는 한 로비 의혹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하는 단계에서는 국세청 출신 전관이 힘을 가장 크게 발휘하고, 조세불복절차에서는 기재부와 조세심판원 출신이 우선된다. 이를 위해 대형 회계법인은 편법을 동원한 전관 스카우트는 물론 세정당국 현직들 관리에도 신경을 쓴다.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3년간 국세청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벌인 단기 해외연수는 모두 40건이다. 이 중 대학 등 공공기관을 제외한 사기업 연수 8건은 모두 대형 회계법인 삼정의 제휴회사인 KPMG에서 이뤄졌다.

문제를 고치기 위해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는 현재 조세불복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재정개혁특위는 복잡한 조세불복 제도를 일원화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다. 재정개혁특위 관계자는 “기업 사건을 대리하는 대형 회계법인들은 어느 기관에서 심사·심판을 받는 게 유리할지를 전략적으로 판단한다. 인맥을 통한 로비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구조가 심화되면 대형 회계법인을 고용할 수 있는 강자들만 구제받는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원화된 조세심판 절차는 조세심판원이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세불복 절차 일원화가 조세심판원의 독립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재정개혁특위 관계자는 “일원화와 별개로 조세심판원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재정개혁특위는 이를 위해 비상임심판관을 없애고 상임심판관을 늘릴 계획이다. 현재 조세심판원 심판관은 상임 6명, 비상임 26명으로 구성돼 있다. 상임심판관을 늘리고 이들의 퇴직 후 재취업 심사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통행세’ 등 조세심판원 로비 의혹을 근본 해결하기 위한 논의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실은 최근 조세심판원에 통행세 관련 자료를 요청했지만 개인정보 보호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추 의원은 “조세심판원 내부적으로 은밀히 벌어지는 통행세 로비 의혹은 사실 수사를 받아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이성규 정현수 기자 zhibago@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