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진우] 반동만 있고 보수는 없다 기사의 사진
보수가 다시 서려면 북한을 평화 파트너로 수용하면서
국가 안전과 이익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여당이 ‘평화는 곧 경제’라고 외치면 야당은 ‘경제가 바로 평화’라고
말할 수 있는 정책적 주도권 가져야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다. 테러의 공포와 이데올로기의 세뇌로 개인들을 철저하게 통제한 히틀러의 전체주의 정권을 경험한 한나 아렌트의 간단명료한 정의다. 아렌트에 의하면 전체주의가 그 어떤 시작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폭압적 정치체제라면 민주주의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치다. 시작할 수 있는 정치적 자유가 실현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서로 경쟁하는 다양한 정치적 의견들이다. 때로는 우리를 짜증나게 하고 피로하게 만드는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실제로는 건강한 정치의 필수조건인 셈이다.

세계 정치지형을 뒤흔들고 있는 신권위주의의 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진보의 힘과 가치가 약화됐을 때 보수는 반동주의의 강한 유혹을 받는다. 보수와 우익이 다시 득세하는 세계 정치 흐름의 관점에서 보면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진보 정권의 득세는 예외처럼 보인다. 민주주의를 퇴행시킨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으로 보수는 죽어도 죽지 못하는 좀비 신세에 처해 있다. 수구적 보수야당은 이참에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은 것을 보면 보수야당의 재생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건강한 정치문화를 위해서는 진보적 이념만큼이나 보수적 가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견제와 균형의 예술을 통해서만 지속가능하다면 보수야당은 건강하게 복원될 필요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유일한 기둥’이니 ‘50년은 더 집권해야 한다’는 여당 대표의 독선적이고 오만한 말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설령 정치적 수사라 할지라도 50년 지속되는 민주당의 집권은 민주주의의 재앙이다.

물론 여당의 오만과 독선을 불러온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보수야당의 책임이다. 보수야당은 아직도 정치적 상황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 그에 맞게 정치 이념과 가치를 변화시켜야 하는데 오직 과거 상태의 복원만을 원하는 반동주의 늪에 빠져 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은 전원책 변호사를 조직강화특위 위원으로 영입해 인적 쇄신을 하고 동시에 보수대연합을 시도하는 모양새이지만 그 기준과 방향이 분명하지 않다. 보수야당이 다시 일어나려 하지만 어떻게 일어나야 할지 모르는 꼴이다.

보수야당이 건강한 정치 세력으로 거듭나려면 정치적 방향을 분명하게 설정해야 한다. 무엇이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인가를 규정하고 결정할 수 있는 어젠다(agenda) 설정능력이 없이는 정치적으로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어젠다라는 말이 ‘행위하다’는 뜻의 라틴어 ‘아게레(agere)’에서 나왔다는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함께 모여 논의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의제를 만들어내려면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능동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우리의 삶에 중요한 의제가 안보와 경제라면 보수야당은 문재인정부와 집권 여당의 정책에 단순히 수동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선제적으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보수야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국민 지지를 얻기 위해 사용했던 정치적 프레임이 있다.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정치적 구호가 그것이다.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역사적인 4·27 판문점 선언과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이 프레임은 깨졌다. 전쟁 위험을 항상 안고 있는 대립적인 남북 관계를 해소하고 평화체제로 나아갈 수 있는 종전선언이 가시권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비핵화라는 난제가 남아 있지만 평화의 흐름은 되돌릴 수 없다. 보수야당이 다시 서려면 이러한 흐름을 적극 포용해야 한다. 반동적인 냉전보수를 뒤로 하고 ‘평화보수’로 발전하려면, 김정은의 북한을 평화의 파트너로 수용하면서도 국가의 안전과 이익을 보존할 수 있는 새로운 보수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은 어쩌면 ‘안보는 진보, 경제는 보수’일지도 모른다. 문재인정부가 한반도에서 평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힘은 우리의 경제력이다. 민주당이 민주화의 기둥을 자처한다면, 보수당은 한국의 산업화를 대변한다. 보수당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정책을 끌어안으면서도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경제성장의 어젠다를 되살려야 한다. 여당이 “평화는 곧 경제입니다”라고 외치면, 보수야당은 “경제가 바로 평화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책적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반동만 있고 지켜야 할 보수적 가치와 어젠다를 능동적으로 창출하지 못한다면 보수는 원인도 모른 채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보수의 죽음은 민주주의의 불행이기에 보수의 혁신을 기대해본다.

이진우 포스텍 교수 (인문사회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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