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민세진] 위기 후 10년 기사의 사진
10년 전 이 무렵 세계는 거의 공황 상태였다.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2008년 9월 파산을 신청하고, 또 다른 대형 투자은행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인수됐다. 제일 큰 보험사인 AIG는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는 등 충격이 정신없이 이어졌다. 미국 금융 위기는 유럽의 재정 위기로 이어질 것이었고, 세계는 국제통화기금(IMF)이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로 규정하게 된 ‘대침체’로 접어들고 있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009년에 국내총생산(GDP)이 줄어들 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될 정도로 폭풍을 피해갔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 그간 바뀐 세상의 파도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중이다.

세상이 바뀐 것은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확산된 것으로 요약된다. 자유시장과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전도사인 미국에서 위기가 시작된 것이 첫째 원인이다. 10년 전에 일본보다도 경제 규모가 작았던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규모로 성장한 영향도 컸다. 판이한 배경의 두 나라 간 갈등이 첨예한 것은 짧게 보아도 10년 세월의 결과인 만큼 쉽게 수그러들 리 없다.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끼어 있는 고달픈 처지인 것이 새롭지는 않다. 그보다 우리 자신이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인 것 같다.

언뜻 보면 한국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두드러지진 않는다. 길게 보면 더 민주적인 방향으로 발전을 이어왔고 이제는 누구도 나라의 주인인 자신의 의견이 무시되는 것을 참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트롱맨’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일사불란하게 나라를 이끌 힘 있는 리더를 원하는 대중의 갈망 역시 비등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청와대가 입법·행정·사법의 3권 위에 군림하는 것은 단적인 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해 바라는 바의 차이가 미묘한 반면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의심은 노골적이다. 자유시장경제는 그 존재 자체가 도전을 받고 있다. 비난의 핵심은 빈부 격차, 즉 결과의 불평등이다. 성실하게 노력해도 좁힐 수 없는 차이가 계속되는 체제를 유지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자유시장을 강력하게 지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까지 풍요로워지길 바란다면 말이다. 자유시장의 대안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정부 통제 경제다. 세상은 너무 복잡해졌고 기술은 연년생도 세대 차이를 느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정부가 무엇을 해라, 하지 마라 하는 것은 최선의 경우 실효성이 없고 최악의 경우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정부의 경제정책 역량은 공정한 시장 조성에 일차적으로 집중돼야 한다. 물론 과정의 공정성이 지켜진다고 해서 결과가 평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시장은 다만 개인의 역량과 돈이 가장 높은 가치로 쓰이도록 유도해 기술에 날개를 달고 전체적으로 더 풍요로운 물적 기반을 만드는 데 탁월할 뿐이다. 결과의 불평등은 제대로 된 재분배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중국은 독재 하에서도 의외로 자유로운 시장을 바탕으로 경제적 성공을 일궜다는 사실 때문에 민주주의가 곤란해졌다. 유물론자가 아니더라도 정치가 먹고사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때 위험에 처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회의는 민주주의의 위기보다 심각할 수 있다. 성장이 정체되는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겠지만 지금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건 분명 규제다. 규제가 쌓인 건 현 정권의 잘못만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시장을 통제의 대상으로 대하는 태도가 더 당당해진 것이 걱정스럽다.

시장에서의 과정이 공정하도록 감시하는 것, 결과의 불평등을 재분배로 완화하는 것, 그리하여 다음 세대의 시작이 공평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정부가 경제에 대해 해야 할 일은 딱 이 세 가지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민세진(동국대 교수·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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