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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의 음식이야기] 설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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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수수
설탕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기원전 327년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 때였다. 당시 대왕이 인도를 침략했을 때 군사령관이었던 네아르쿠스 장군이 갈대와 같은 식물 줄기에서 단맛 즙을 만드는 걸 본 게 최초였다. 그는 벌의 도움 없이도 갈대의 줄기에서 꿀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는 사탕수수를 가리켜 ‘꿀벌 없이 꿀을 만드는 갈대’라고 했다. 인도에서 설탕을 제조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은 5세기의 힌두교 종교 문헌에도 나타난다. 수액을 끓이고 당밀을 만들고 설탕 덩어리를 굴린다는 표현들이 사용되었다.

페르시아에서는 서기 500년쯤부터 사탕수수를 재배했다. 그때 이후 설탕이 세계적으로 전파된 데에는 무함마드의 공이 크다. 정복지 페르시아에서 사탕수수를 발견한 무함마드 군대는 그 ‘페르시아 갈대’에 매료되어 정복지마다 사탕수수를 갖고 갔다. 710년에 정복된 이집트에도 군대와 함께 사탕수수가 들어갔다. 이집트인들은 사탕수수 재배기술과 정제 등의 설탕 생산 과정을 발전시켰다. 사탕수수는 이집트에서 계속 서쪽으로 이동해 북아프리카를 가로질러 모로코까지 이르렀고 755년 마침내 지중해를 넘어 스페인 남부까지 이동했다. 이렇게 해서 8세기쯤 이슬람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면서 남부의 따뜻한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서구 최초로 사탕수수가 경작되었다. 이후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벌어진 십자군 전쟁은 설탕 전파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유럽인들은 아랍으로부터 설탕뿐 아니라 설탕 제조기술까지 받아들여 시칠리아 등 지중해 지역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정제기술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한 부의 축적은 나중에 르네상스 개화의 발판이 되었다. 이어 15세기 포르투갈과 스페인 대항해 이후 사탕수수 재배는 아프리카와 중남미로 퍼져나갔다. (출처; 설탕, 2005. 4. 28, 김영사)

세종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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