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라동철] 양날의 칼, 차등의결권 기사의 사진
의결권 크기를 달리한 주식의 발행을 허용하는 차등의결권 제도의 도입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이 제도는 줄곧 자유한국당에서 추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체로 반대하는 기류가 강했으나 최근 찬성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운열 의원이 관련 법안을 지난 8월 발의했고 김태년 정책위의장도 최근 벤처기업에 대한 차등의결권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며 엄호사격에 나섰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업계도 적극 찬성하고 있다. 반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일부 시민단체나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들은 경제민주화에 역행한다며 반대하는 분위기다.

우리나라는 주주평등 원칙에 따라 차등의결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상법 제369조(의결권)에 ‘의결권은 1주마다 1개로 한다’고 못 박고 있다. 그러나 외국에는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곳이 많다. 미국 일본 독일 스웨덴 싱가포르 등에서 시행 중이고 중국도 최근 IT 등 기술기업을 대상으로 도입을 추진 중이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차등의결권 주식은 1주당 의결권이 일반 주식의 10배다. 페이스북, 알리바마, 샤오미 등도 이 제도 덕분에 경영권 위협에 대한 걱정을 덜고 기업경영에 매진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차등의결권 제도가 도입되면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 자본의 공격을 막는 데 유리해 기업의 경영권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대기업이 지분 투자를 내세워 유망한 벤처기업의 경영권을 빼앗는 것도 어려워진다. 창업자나 대주주는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걱정 없이 자금을 조달해 기업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취약한 지배구조 탓에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아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던 대기업들도 도입을 반기는 쪽이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차등의결권은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의결권 대결이 제약되기 때문에 대주주가 기업을 독단적으로 경영하더라도 견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게 된다. 경영자가 무능하고 기업에 큰 손실을 끼쳤더라도 대주주가 반대하면 교체하기 어렵다. 경영권 승계에서 대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경실련은 17일 “차등의결권은 재벌 경영권 세습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며 민주당을 규탄하는 내용의 성명을 내놓았다. 재벌 3·4세들이 벤처기업을 설립하고 증자 등을 통해 기업 가치를 키운 뒤 재벌 그룹의 지주회사를 지배함으로써 그룹 전체를 세습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것이지만 재벌들의 그간 행태를 감안하면 기우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물론 민주당이 도입하고자 하는 차등의결권 제도는 적용 대상을 비상장 벤처기업으로 제한하고 있다. 상장 전 주주들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증여하거나 상속하면 일반주로 변하도록 하는 등의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일단 제도가 도입되면 영향력이 막강한 재계의 로비 등에 의해 향후 적용 대상이 확대되는 등 변질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차등의결권 제도는 양날의 칼이다. 어떻게 설계해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려 있는 것이지 그 자체가 선이거나 악은 아니다. 스타트업 업계가 차등의결권 도입에 적극 찬성하는 걸 보면 이 제도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 악용 가능성을 너무 부각시켜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제도의 취지는 살리되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으면 된다. 적용 대상을 자산 일정 규모 이하로 제한하고 법률에 확실하게 명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은산분리 완화 논란을 부른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특례법은 산업자본(비금융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지분 상한을 34%로 높이면서 적용 및 금지 대상을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규정해 대기업에도 참여의 길을 열어준 것 아니냐는 논란을 자초했다.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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