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천지우] 스시가 아니라 초밥? 기사의 사진
일본 군함이 욱일기를 달고 제주 국제관함식에 오려는 것을 놓고 논란이 일었던 이달 초 소설가 이외수씨는 SNS에서 “왜놈들이 똥고집을 부린다”고 분노하며 “곧 무지막지한 초대형 쓰나미 또 한바탕 축제 삼아 보내 줄게”라고 썼다. 이 글에는 ‘사이다’(속이 시원하다는 뜻)라며 공감하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분노도 이해되고 사적 공간에서 감정을 가감 없이 표출하는 것도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 표현과 반응이 섬뜩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초대형 쓰나미로 무지막지한 비극을 겪은 나라에 또다시 쓰나미를 ‘축제 삼아’ 보내준다니, 그곳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기쁘게 보겠다는 것인가. 이건 농담으로도 할 말이 아니다.

지난 5월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은 영화를 함께 만들었던 미국 감독이 어린 시절 욱일기 디자인의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자 ‘좋아요’를 눌렀다가 한국인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는 부랴부랴 한국어와 영어로 사과문을 올렸는데, 영어 사과문이 부실하고 진정성이 없다며 또 욕을 먹었다. 미국인에게까지 투철한 민족주의적 역사의식을 요구하는 그악스러움이 피곤하다.

더 피곤하고 황당한 일도 있었다. 지난 8월 홍성룡 서울시의원은 “공공기관에서 일본제 물품을 사서 쓰는 상황은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선열에게 부끄러운 일”이라며 서울시청·구청·공립학교 등에 일본제 물품 사용 현황을 전수조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참으로 무의미한 행정력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이후 SNS에서는 홍 의원이 예전에 일본식 돈가스와 스시 전문점을 다녀갔다는 게시물을 올린 적이 있다며 위선적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자 홍 의원은 머니투데이 인터뷰에서 당시 단체 모임이었기 때문에 일본 음식을 안 먹을 수 없었다고 해명하며 “스시라고 생각을 하면 안 되고 초밥이라고 생각을 하고 먹는 것”이라고 했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일본 음식도 우리말 명칭으로 인식하고 먹으면 마음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얘기인가.

위 사례들처럼 반일(反日) 정서는 여전하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는 ‘일류’(日流·일본문화의 유행) 현상을 보면 반일 정서가 무색해진다. 서점에는 일본 작가들의 신작 소설이 가득하고, 주택가에는 일본 가정식 음식점이 속속 들어섰으며, TV 예능 프로그램에선 다양한 일본 관광 코스가 요란하게 소개되고 있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 수는 한국에 오는 일본인 관광객의 3배에 달한다. 지난 1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류 현상을 보도하면서 “높은 실업률에 괴로워하는 한국의 20, 30대에선 한국사회를 차가운 눈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 일본에 대한 저항감이 비교적 작다”고 전했다.

이런 현상이 못마땅한 분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무뎌지는 것은 거스르기 힘든 흐름으로 보인다. 가장 가까이 있어 자주 접촉할 수밖에 없는 나라를 분노와 증오의 감정으로만 대한다면 평화적 공존이란 게 과연 가능할까 싶다.

재일교포 3세 학자인 박상휘 중국 중산대 특빙연구원은 일본을 다녀온 조선 사절들의 기록(사행록)을 분석해 ‘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이 책에 따르면 시간이 흐르고 교류가 거듭될수록 조선 사절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조선 후기의 문신 원중거는 일본 문인들과 교류한 뒤 “우리가 만약 그들(일본인)과 더불어 마음을 다하고 정성스럽고 화목하게 하고, 교만하며 꾸미는 뜻을 보이지 않는다면 저들은 모두 적심(赤心·거짓 없는 참된 마음)을 보여줄 것”이라고 적었다. 박 연구원도 “화합과 충돌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인간적 교류를 쌓아나가는 것이 평화적 공존을 위해 제일 소중하다”고 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화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어렵더라도 껄끄러운 상대와 더불어 잘 지내는 방향으로 노력했으면 한다.

천지우 정치부 차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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