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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끝나지 않는 갈등, 치유의 역사 기도

NCCK, 70주년 맞아 ‘평화기행’

‘여순사건’ 끝나지 않는 갈등, 치유의 역사 기도 기사의 사진
전남 여수 애양원 인근에 조성된 손양원 목사와 양아들 안재선의 조형물. 주인 없는 의자는 여수·순천 10·19 사건 당시 좌익 학생들의 고발로 처형당한 손 목사의 아들 동인과 동신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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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인가 항쟁인가, 봉기인가 폭동인가.’

70년이 지나도 계속 나오는 질문이다. 1948년 10월 19일 ‘제주의 동포를 학살할 수 없다’며 전남 여수 주둔 국군 14연대가 항명을 일으켜 촉발된 ‘여수·순천 10·19 사건’은 여전히 한쪽에선 반란, 다른 쪽에선 봉기로 불린다.

이념에 따른 갈등의 골이 깊지만 ‘이웃의 상처를 함께한다’는 교회의 정신은 이를 메워 화해로 나아갈 유일한 교량이다. 4·3사건 70주년을 맞아 화해를 모색하는 제주도처럼 여수와 순천 등 전남 동부지역에도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길 바라는 교계의 발걸음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는 지난 18일 여수에서 여순사건 70주년 평화기행을 개최했다. 전남동부NCC 주최로 광주NCC 충남NCC 등 각지의 목회자 40여명이 참석했다. 평생 여순사건을 연구한 주철희 전 순천대 교수가 목회자들을 이끌었다. 14연대가 주둔했던 여수 신월로 한화 사업장 앞 지하벙커에서 시작해 첫 교전지인 진남로 오거리, 토벌군이 패배한 인구부 전투지역, 아흐레 만에 사건이 종결된 뒤 부역자 색출 작업을 했던 여수 중앙초등학교, 부역자를 처형한 만성리 형제묘까지 답사했다.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 회원 39명도 바다를 건너와 검은 옷을 입고 답사에 합류했다.

오임종 제주유족회 부회장은 “우리에겐 제주 출정 명령을 거부했던 여수의 군인들이 은인”이라며 “조기 출동했다면 제주의 인명피해가 수만명 더 늘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당시 정부 수립 두 달도 안 된 이승만정권에 14연대의 반란은 치명적이었다. 주 전 교수는 “당시 국군은 총 15개 연대로 구성됐는데 이 중 절반인 6개 연대가 진압을 위해 이곳에 집결했다”고 밝혔다. 이승만정권은 함정까지 동원한 육해공 입체 작전으로 9일 만에 반란을 완전 진압했다. 14연대 일부는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됐고 이승만정권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다. 여수 순천 보성 등 전남 동부지역에서 부역자 색출 등의 명목으로 1만5000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체제에 반대하면 처참하게 죽는다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줬다.

19일 오전에는 NCCK 방문단과 별도로 여수공항 활주로 너머에 위치한 애양원을 찾았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과 손양원(1902∼1950) 목사가 한센인을 돌본 곳이다. 한센인 70여명이 지금도 정착촌을 구성해 양계 등을 하며 살아간다. 손 목사는 이곳에서 한센인을 돌보다 여순사건 당시 두 아들을 잃었다. 여순사건 사흘째인 48년 10월 21일 좌익 계열 학생들의 고발로 손 목사의 장남이자 순천사범학교 기독학생회장을 역임한 손동인과 차남 손동신이 처형됐다. 손 목사는 반란 진압 후 두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좌익 리더 안재선을 양아들로 삼고 화해와 용서를 실천했다.

안타깝게도 ‘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은 지난 3월부터 내부 사정으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애양원교회와 손 목사 후손 사이 유품 관련 갈등 때문이다. 대신 방문한 애양원 역사박물관 관계자는 “여순사건은 ‘제14연대 반란’이라고 불러야 맞다”고 견해를 밝혔다. 여수와 순천 사람들 일부가 이승만정권에 반대해 가담했어도 사건의 시작은 군인들의 반란이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19일 오후에는 여수 YMCA에서 70주년 추모예배가 열렸다. 이홍정 NCCK 총무는 최근의 방북 소감(국민일보 10월 19일자 25면 참조)을 전하며 “분단과 냉전의 70년 세월에서 우리 안의 상처와 파편들이 아직 남아있다. 기도와 연대와 돌봄의 힘으로 치유와 화해의 생살이 돋아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축도를 한 홍인식 순천중앙교회 목사도 “교회가 지역의 아픔을 함께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전했다.

여수=글·사진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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