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찬희] 2만원짜리 공기청정기 기사의 사진
2년 전 봄, 황사에다 미세먼지가 심하던 때였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대안교육 프로그램인 ‘틈새포플러스학교’에 다녀온 두 아이의 손에 괴상한 물건이 들려 있었다. 2㎜ 정도 두께의 카드보드지로 만들어진 가로·세로 19㎝, 높이 30㎝ 직육면체를 아이들은 ‘공기청정기’라고 불렀다. 자세히 보니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어댑터가 연결돼 있고, 공기를 빨아들이는 팬 달린 모터도 보였다. 팬 뒤편엔 하얀색 필터와 검은색 스펀지가 차례로 배치돼 있다. 이게 다였다. 이런 단순한 기계를 공기청정기라고 부를 수 있나 싶었다.

1주일쯤 썼나. 각자 방에서 사용하던 미니공기청정기 1호와 2호는 소음이 심하다는 이유로 베란다 창고로 자리를 옮겼다. 잊힌 줄 알았던 미니 1호, 미니 2호가 얼마 전 거실로 진출했다. 미세먼지가 극성이던 날이었다. 아내는 아이들 방에 그럴싸한 ‘공장 제조’ 공기청정기가 1대씩 있으니, 거실에는 미니 1호와 2호를 가동해 보자고 제안했다.

성능에 대한 불신을 걷지 못해서일까. 제작비용, 구성품 등을 물어봤다. 미니 1호와 2호의 제작비용은 대당 약 2만원에 불과하다. 미세먼지를 99.95% 제거할 수 있다는 0.3㎛ 헤파필터를 품고 있다. 한 대로 5평(16.5㎡) 정도 되는 공간을 책임질 수 있고 필터 사용기간은 1년가량이다. 7000원 하는 헤파필터만 갈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소비전력은 하루 8시간씩 1년을 썼을 때 500원 수준이라고 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큰아이가 끼어들었다. “저 하얀색이 헤파필터예요. 공기 중의 미립자를 여과하는 장치로 저게 핵심이죠.” 제 손으로 뭔가를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아직 남아 있는지 목소리가 커졌다. “아빠, 이런 걸 적정기술이라고 해요.”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중간기술’이라는 단어에 뿌리를 둔다. 오로지 ‘첨단’만을 지향하는 현대기술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소프트 사이언스, 래디컬 테크놀로지 등도 비슷한 의미의 말이다. 독일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는 1973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책을 펴내고 중간기술 운동을 제안했다. 저개발 국가나 개발도상국에서 자신들의 문화, 자연환경, 경제·과학 수준 등에 맞는 기술을 적용해 삶의 질을 높이고 빈곤과 질병을 퇴치하자는 것이다. 핵심은 ‘수준에 맞는 기술’이다. 영국 석탄공사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1950년대 버마(현재 미얀마) 정부의 경제고문도 지낸 슈마허는 선진공업국의 첨단기술을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 국가에 적용했을 때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주목했었다.

현재 적정기술은 ①친환경적이고 ②사용자 제조가 가능하도록 현지 수준에 맞는 재료·기술을 쓰며 ③적은 비용으로 만들 수 있고 ④지적재산권이나 컨설팅 비용이 들지 않으며 ⑤대규모 사회기반시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 기술로 정의할 수 있다. 낮에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해 저장했다가 밤에 발광다이오드(LED)를 밝히는 태양광 전등 ‘딜라이트’, 하나로 한 사람이 1년간 먹기에 충분한 물(700ℓ)을 정수해주는 개인 휴대용 정수 빨대 ‘라이프 스트로’, 물을 긷고 나르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도넛형 플라스틱 컨테이너 ‘큐드럼’ 등이 적정기술의 성공 사례다.

적정기술은 반성에서 출발한다. 사람 대신 숫자와 기술을 중심에 둔 경제 성장, 과학기술 개발이 자원·에너지 낭비, 환경 파괴, 노동 소외 등을 불러왔다는 고백이 시작점이다. 적정기술은 ‘적당한 기술’을 쓰자는 게 아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발전·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건강한 기술’을 쓰자는 것이다. 기술이 첨단으로 치닫고 경제가 무조건 규모를 키우는 게 늘 정답은 아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불평등, 불공정, 소득양극화, 환경파괴, 기후변화 등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도 않는다. 어쩌면 인류는 재생, 균형, 분배라는 가치에 눈을 돌려야 하는 순간에 서 있는지 모른다.

김찬희 경제부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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