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환자에게 해 끼치지 마라 기사의 사진
의사윤리강령에 포함돼 있지는 않지만 의사에게 꼭 필요한 기본 철칙이 있다. 바로 ‘Do no harm.’ 즉 환자에게 해(害)를 끼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 의료계를 달군 ‘소노그래퍼’ 인증제 도입 논란을 보고 떠올린 의사직업윤리다. 소노그래퍼는 심장초음파 검사 보조 인력을 가리킨다. 소노그래퍼 인증제 논란은 대한심장학회가 2020년 심초음파검사의 건강보험 적용에 대비해 내년부터 간호사, 방사선사 등을 대상으로 인증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심장학회는 “심초음파 시행 기관 및 보조 인력에 관한 인증은 이미 미국·일본 등 해외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심초음파 검사의 오·남용 방지와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학회 차원에서 정도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 대한의원협회 대한전공의협회 등 의사 단체들과 대한의학회는 “의사의 지휘감독 없이 검사를 하는 것은 위법이므로 인증제 도입을 철회해야 한다”며 잇달아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특히 대한의학회는 심장학회에 보낸 권고문을 통해 “심초음파 진단의 전문성 강화는 의사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만 이뤄져야 한다. 진료 무자격자를 통해 심초음파 진단의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발상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심장학회 발상이 (그대로) 실행된다면 전공의 교육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며 “더 이상 의업의 기본 철칙에 반하는 일이 없도록 조치해줄 것”을 주문했다.

대한의사협회도 “만약 소노그래퍼 인증제 추진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협회 차원에서 윤리위원회 회부, (심장학회 인증 소노그래퍼의) 무면허 의료행위 고발 등 강경 대응에 나서겠다”고 거들었다. 결국 심장학회가 손들었다. 학회는 23일 “의료기관 내 무면허 의료행위 조장 논란을 일으킨 소노그래퍼 인증제 도입을 유보하고 의사협회와 ‘의료기관 내 무면허 의료행위 근절 특별위원회’에서 재고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이들에게 되묻고 싶어졌다. 당신들에게 과연 의료기관 내 무면허 의료행위 근절 운운할 자격이나 있느냐고 말이다. 간호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등 다른 직역의 의료인에게는 국민건강을 위한 것이라며 엄격한 직업윤리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정작 자기들 내부 비리에 대해선 관대한 게 의사 집단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다.

A사 46회, B사 35회, C사 28회, D사 21회…. 국내 의료기기 회사 직원이 올 1월부터 지난 11일 현재까지 국립암센터 수술실에 드나든 기록이다. 국립암센터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다. 같은 기간 모두 118명이 301회나 출입한 것으로 돼 있다.

수술실 출입 사유는 수술 참관과 교육, 장비 설치 후 시험 가동을 해보는 ‘데모’가 대부분이었다. 주 1회 수술실을 방문한 A사 직원은 총 46회 중 43회가 수술 참관이었고, 나머지는 교육(1건)과 데모(7건) 목적이었다고 적었다. 수술용 로봇을 납품하는 B사 직원은 총 35회 중 33회를 수술 참관과 교육 목적으로 출입했다고 기재했다. 누구를 위한 수술 참관이고, 누구를 위한 교육이었을까. 정 의원은 이에 대해 “대리수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마취 상태의 환자는 수술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수술실에서 환자를 전신마취한 뒤 환자의 동의 없이 집도의사를 바꿔치기하는 것이 이른바 유령수술이다. 이런 유령수술 의혹에 이어 급기야 면허도 없는 의료기기 회사 영업사원에 의한 대리수술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전문가 집단의 권위와 신뢰는 전문성에 부합하는 직업윤리와 그에 따른 자정능력에 의해 유지된다. 자정능력이 없는 의사 집단은 끝내 신뢰 상실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환자에게 해가 될 일을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이유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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