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윤중식] 내 안의 ‘맹구’를 찾아서 기사의 사진
‘7번집’ 앞을 지나갈 때면 늘 심장이 쿵쾅거렸다. 1970년대 초반, 다이얼 전화기도 아니고 손으로 전화통 오른편에 있는 ‘ㄴ’자형 손잡이를 돌려 교환수를 부르고, 교환수가 원하는 통화자와 연결해줘야 통화하던 시절이었다. 5일장이 서는 면소재지에 있던 그 집의 전화번호는 7번이었다. 전화기 설치를 신청한 순서에 따라 전화번호가 매겨졌던 때다. 그 집안은 주인 형제들 중에 힘 있는, 당시 잘나가는 인사들이 수두룩했다. 형제들이 단 별(계급장)을 모으면 그 수가 예닐곱 개는 족히 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설에 불과할 정도로 쇠락하고 말았다.

등하굣길 아이들은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7번집의 충견 ‘뚱띠(뚱보)’한테 잘못 걸리면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자기 발보다 큰 고무신을 신은 아이들은 그 집 대문 가까이 이르기 전에 신발을 벗어들고 살금살금 걷다가 문이 열려 있으면 쏜살같이 내달렸다.

7번집 옆은 동네에서 가장 큰 도가였다. 사무실 문 앞엔 누렁이 한 마리가 꼬리를 치켜세우고 컹컹거렸다. 한때는 인근 리(里)에 있는 4개 도가를 합쳐도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주인이 한두 번 바뀌더니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7번집과 도가가 왜 그렇게 됐는지는 나중에 깨달았다.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진다’는 구맹주산(狗猛酒酸) 혹은 맹구지환(猛狗之患)이라는 중국 송나라 때 고사성어를 통해서다. 그 옛날 술을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술그릇도 매우 깨끗하고 현수막도 높이 걸어놓았지만, 술이 시어지도록 팔리지 않았다. 손님이 술 사러 들어오면 개가 달려들었기 때문에 아무리 술맛이 좋고 주인 인심이 좋은들 소용없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교훈은 순자(荀子)의 기록에도 있다. 선비에게 질투하는 친구가 있으면 주변에 좋은 친구가 모여들지 않고 임금에게 질투하는 신하가 있으면 어진 사람이 이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공자(孔子)도 한때는 천하주유를 했었다.

맹구는 시기하고 질투하는 신하와 같은 존재다. 한 나라의 국정에도 이러한 맹구들이 포진해 있는 한 진정한 국가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나 종교, 조직이나 개인 구분할 것 없이 늘 사나운 개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대치하면 좋은 성과나 결과를 찾기 힘들다.

영악한 맹구들은 누군가 자신을 잡으려고 달려들면 사직단(社稷壇)에 숨어 사는 쥐(社鼠)처럼 ‘권력’ 속으로 숨어들어 서로를 비호한다. 맹구는 결코 자신을 위해 짖지 않는다. 주인에게 충성하기 위해 짖는 것이다. 그렇게 충성스럽게 짖음으로써 맹구는 주인과 손님 사이에 장벽을 쳐놓는다. 인의 장막을 쳐 철옹성을 만들고 최고책임자의 눈과 귀를 막아버린다. 감옥에 있는 전직 대통령이 대표적인 사례다. 자신들이 임명한 ‘문고리’들의 농간으로 ‘국정농단’이란 불명예를 안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살아있는 권력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혹시나 농간을 획책하려는 ‘문고리’들은 없는지, 자기 주변에 사나운 개가 없는지 항상 잘 살펴 봐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큰 교회와 작은 교회, 자영업 가릴 것 없이 상대로부터 썰렁한 반응이 돌아온다면 우선 사나운 개가 어떤 것이며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가게 안의 환경이 좋지 않으면 그것이 맹구일 것이고 직원이 불친절하고 나태하면 그 직원이 사나운 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척한 지 오래됐는데도 신자가 늘어나지 않거나 슬금슬금 교회 문턱을 넘어 빠져나가는 신자들이 잇따른다면 우선 자신의 목회가 어떠한지와 예배당 안 분위기부터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맹구는 바깥에만 있지 않다. 나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나이 쉰을 훌쩍 넘기고서야 깨달았다. 청나라의 서예가 정섭(판교)은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교훈을 남겼다. 총명함을 잃지 않은 채 어리석게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는 말이다. 까칠하고 똑똑한 척 그만하고 왕년의 만화영화 ‘짱구는 못말려’나 개그콘서트 ‘봉숭아 학당’에 출연한 ‘맹구’처럼 지낼 수는 없는 걸까.

윤중식 종교기획부장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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