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임성빈] 종교개혁과 한국교회의 과제 기사의 사진
2017년,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다양하게 가진 바 있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 받아 더욱 신앙인다운 신앙인, 교회다운 교회가 되자는 목적에서였다. 이제 한 해가 지나 501주년을 보내며 우리는 새로운 각오로 종교개혁의 정신과 내용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기억할 것은 종교개혁은 종교적 영역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종교개혁은 새로운 시대를 연 생각의 기초를 마련한 모판이었다. 종교개혁의 사상들은 제도권 내에서의 종교적 사유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한계와 불합리성에서 탈피하려 노력하였다. 말씀 안에서 적극적으로 이성과 경험의 역할들을 존중하고, 그것에 신학적 정당성을 제공함으로써 학문의 분화 및 지식의 축적을 통한 과학혁명을 가능케 했다. 종교개혁이 당대의 인문정신을 존중하면서 끊임없이 대화함으로써 새로운 근대인을 배출하는 교육제도를 제안 구성하는 데에 앞장섰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적 소양의 구비는 오늘날 목회자뿐만 아니라 신앙인들에게 요청되는 과업이다. 이것은 단순히 인문학이라는 특정 학문과의 대화라기보다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사건들과 관점들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면서도 이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가 실현될 수 있는 삶의 자리에 대한 구체적 고민의 장이 우리에게 필요함을 의미한다. 정치 경제뿐 아니라, 사회 문화 교육, 예술 전반의 문제들과 고민들, 그 해결을 위한 모색들과의 창조적 소통을 통해 더욱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공통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과학과의 대화는 더욱 필요하다. 종교개혁은 근대적 사고방식을 가능하게 하는 사상적 기반이었고 결과적으로 과학혁명을 촉발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와 과학의 관계는 불필요한 긴장관계 속에서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느낌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적확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이분법적 논쟁과, 근본주의적 형태의 과학담론이 한국교회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종교개혁이 인간의 사고를 탈마법화 시키면서 인간 이성과 경험의 역할을 통해 생활세계의 발전과 진보를 가져다주고 문명의 전환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눈부신 성과를 낸 과학이 이제는 스스로 모든 문제의 권위가 되어 신과 종교의 자리까지 침범하려는 과학주의적 태도 역시 우리사회의 신앙과 과학의 건강한 대화를 가로막는 주요한 요소임을 간과할 수 없다.

기독교와 과학의 바람직한 관계는 서로의 자리와 역할을 인정하고 상호 탐구하는 데 있다. 특히 종교개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종교개혁은 문화적으로 볼 때 르네상스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근원으로 돌아가자(Ad fontes)’는 원전 연구에 대한 학문 태도가 확대되면서 그리스, 로마 문명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신화적 사고가 아닌 이성과 경험에 의한 주체적 사고, 바른 사고를 하는 근대적 사유인들이 더욱 많아져 종교개혁은 결국 성공할 수 있었다. 종교개혁은 이성과 경험의 측면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신학적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르네상스 이상을 꽃피울 수 있게 하였다. 이것은 종교와 이성이 서로 배치되지 않고 창조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예이다. 종교는 과학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더 깊고 풍성한 이해를 성취해야 한다. 동시에 과학은 종교와의 대화를 통해 그 영역 안에서 인류 공동체의 진보를 이루어 가는 데 쓰임 받아야 한다.

이성을 배제한 신앙은 맹목과 광신으로 흐르고, 신앙을 배제한 이성은 창의성과 겸손을 상실한 채 스스로 하나님 노릇을 하려는 유혹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통해 신앙과 과학, 교회와 세계와의 창조적이고 건설적 대화를 이뤄가고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와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가는 한국교회와 사회를 소망한다.

임성빈 장로회신학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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