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면 ‘적’… 혐오로 뒤덮인 광장 기사의 사진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남성 중심 시민단체 ‘남성과 함께 하는 페미니즘(남함페)’ 회원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1번 출구 앞에서 ‘곰탕집 성추행 사건 피해자의 꽃뱀 추정을 중단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이 단체가 요청해 시위 참가자의 얼굴을 가렸다. 오른쪽 사진은 남함페와 정반대 입장의 단체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 회원들이 약 200m 떨어진 2번 출구 앞에 모여 곰탕집 성추행 사건 유죄 판결을 비판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오프라인 시위, 극단적 충돌… 성대결·보혁 갈등 재생산
온라인선 ‘좀비·기쁨조·X충…’ 논쟁 대신 조롱·욕설만 가득
갈등 중재해 줄 장치 없어… SNS 문화 여과없이 확산


지난 주말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동일 사안을 둘러싼 서로 다른 주제의 맞불 집회가 열렸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남함페)’ 단체는 혜화역 1번 출구를,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는 혜화역 2번 출구를 각각 거점으로 시위를 벌였다. 당당위는 곰탕집에서 여성을 성추행한 남성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한 판결을 두고 “피해자의 일방적 주장인데 명확한 증거 없이 실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반면 남함페는 이런 시위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며 “성범죄 피해는 사적 공간에서 일어나 피해를 당하고도 제대로 고발하지 못하는 여성이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광화문과 서울역 광장에서도 진보·보수의 정반대 투쟁이 이어졌다. 민주노총 등이 주축이 된 ‘박근혜 퇴진 촛불 2주년 조직위원회’는 광화문에서 “청산되지 않은 적폐세력들이 국회·정부·사회 내에서 고개를 쳐들며 촛불 민의를 부정하고 왜곡하기에 여념이 없다”고 비판했다. 대한애국당 주최로 열린 서울역광장 탄핵무효 집회는 촛불집회를 ‘폭동’ ‘쿠데타’로 명명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퇴진 목소리를 높였다.

4개의 집회가 끝나자 정해진 수순처럼 온라인은 다시 혐오의 언어로 뒤덮였다. 혜화역 인근 집회엔 양쪽 통틀어 400명 정도가 모였을 뿐인데 온라인에선 이들 단체 이름이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며 이슈로 떠올랐다. 댓글 상당수가 “한남X들 단결력 봐라” “X페미들 또 쿵쾅댄다” 등 상대를 깎아내리고 험담하는 글이었다. 진보·보수 집회 이후에도 ‘촛불좀비’ ‘문X 기쁨조’ ‘태극기충’ ‘틀딱충’ 등 상대 진영을 향해 원색적인 비방을 담은 글이 난무했다. 논쟁은 없고 조롱만 가득했다.

광장의 목소리가 혐오로 뒤바뀌고 있다.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고 해소할 공론의 장이 없다보니 ‘혐오 과잉’은 일상이 됐다. 전문가들은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에 누적된 혐오가 사회적 소수에 대한 편견·차별을 넘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집단을 배척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혐오를 표출하는 방법도 더 공격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정 사건이 이슈화되면 사건의 본질은 흐려지고 증오만 만연한 풍경은 낯설지 않다. 최근 경기도 김포의 어린이집 교사가 아동학대 가해자로 몰려 자살한 사건은 곧바로 ‘맘카페 혐오’를 낳았다. 맘카페에 교사의 신상정보가 오르내렸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맘충’이 사람을 죽였다”는 극단적 비난이 폭주했다. 지난 14일 발생한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직후 인터넷에는 범인이 조선족이라는 가짜뉴스가 퍼졌다. 전형적인 이주민 혐오의 단면이었다. 지난 6일 혜화역에서 열린 ‘제5차 편파판결, 불법 촬영 규탄시위’에선 시위대 옆을 지나던 한 남성이 비비탄총을 발사하며 참가자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 교수는 28일 이런 혐오의 근원에 장기간 계속된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양극화,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어울리고 싶지 않은 문화적 나르시즘 등 여러 사회적 요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특히 개인주의와는 별개로 다른 사람을 일절 믿지 못하는 불안감이 크다”며 “공론의 장이 적고 다양한 계층·성별·연령의 사람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보니 사회적 신뢰가 약하다. 이런 사회일수록 개인이나 집단은 상대를 협력자보다는 경쟁자로 본다”고 말했다.

사실상 의견 표명의 장이 온라인 공간으로 대체되면서 혐오가 빠르게 확산됐다는 지적도 있다. 선택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온라인 문화 특성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 교수는 “소셜미디어는 객관적 사실을 확인하기 이전에 굉장히 빠르게 개인의 의견을 보편화하고, 도발하고, 공유할 수 있다”며 “우리 사회는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데 아직 미숙하다.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나름의 준비나 대안이 없다면 인터넷에서 나오는 극단적 담론이 오프라인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가 차원에서 장기적 관점에서 혐오 문제를 다루고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한국 사회의 혐오나 차별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내년부터 별도의 특별팀을 만들어 대응키로 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지방 대학을 오래전부터 ‘지잡대’라고 표현해 왔다. 한국 사회에는 학력·학벌 차별, 지역 차별, 노동 환경 차별 등 수많은 차별과 그에 대한 혐오가 존재해 왔다”며 “혐오가 사회적 소수의 문제이고, 특정 그룹만 해당된다고 생각한다면 혐오에 민감할 수 없고 문제의식을 가질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그동안 남의 나라 일인 줄 알았던 난민 문제도 우리의 일이 됐을 때 정부가 명확한 정책이나 방침을 내놓지 못했다”며 “입법체계 개선은 물론 시민교육의 형태로 꾸준히 인식을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일부 마을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긴 하지만 사회의 양극화, 개인화 속도에 비하면 너무 늦다”며 “통합적인 사회보장제도를 만들고, 공적 영역을 늘리는 정치의 노력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상은 이재연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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