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칼럼]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기사의 사진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는 여권의 가짜뉴스 대응, 유튜브 보수진영 노렸다면 ‘자유 없는 민주주의’ 행태
재판부 제척 제도 있는데 특별재판부 만들려는 건 사법부 독립 무력화하는 ‘공화 없는 민주주의’ 후퇴


민주주의는 이 정권의 핵심 브랜드다. 집권당의 뿌리는 민주화운동이고, 대통령도 민주주의를 가장 숭고한 이념으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경구처럼 언급되는 ‘촛불혁명’도 민주주의 에토스를 강조하기 위함이리라. 그런데 이 정권의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이 무엇인지 묻고 싶어지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가짜뉴스부터 특별재판부 추진까지 만일 입장이 바뀌어 현 여당이 야당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원래 민주주의는 ‘다수의 통치’라는 이념을 구현한 것이다. 토크빌은 이를 ‘평등의 에토스’라 불렀다. 하지만 다수(그 별칭으로 국민)라는 이름만 앞세우다가는 이상한 출구가 나온다. 그것은 다수의 이름으로 통치하는 독재자를 만들 수도 있다.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를 억압할 수도 있다. 목소리 큰 사람들의 우둔한 생각이 다수로 변장해 폭민정치나 포퓰리즘을 낳기도 한다. 토크빌이 미국 민주주의를 찬양하면서도 ‘다수의 횡포’ 위험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도 그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 역사는 바로 그런 위험을 벗어날 수 있는 이론과 제도를 만들기 위한 분투의 역사다.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직접 민주주의가 대의제 민주주의보다 뛰어난데 불가피하게 대의제 민주주의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제도로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의 문제와 위험, 무능을 극복할 수 있는,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우월한 제도이다. 그러므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직접 민주주의로 바꾸는 것은 쌀 주고 겨를 받는 것과 같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중심이고, 직접 민주주의가 가미되는 요소이지, 그 역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직접 민주주의를 우상화한 모든 나라들이 전체주의나 포퓰리즘에 빠졌음을 잊지 말자. 진화된 대의제 민주주의는 국민이 ‘탁월한 사람들’을 뽑아 권한을 위임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들이 법에 의거해 국정을 운영하되 권력을 자의적으로 남용하지 않고,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면서,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공공선을 구현하는 데 진력해야 한다. 그래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왼팔에는 ‘자유’를 끼고 오른팔에는 ‘공화’를 끼워야 온전한 모습이 된다. 자유를 뒷받침하는 것이 ‘언론의 자유’ ‘다원주의’ ‘법치’이고, 공화를 뒷받침하는 것이 ‘3권 분립’ ‘공공선’ ‘시민적 덕성’ 등이다. 자유를 경시하는 민주주의나 공화를 무시하는 민주주의는 결코 온전한 대의제 민주주의일 수 없다.

가짜뉴스 문제만 해도 그렇다. 가짜뉴스를 걸러내야 한다는 데에야 누가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이 정권은 역대급 영향을 미친 ‘PD수첩’의 광우병 가짜뉴스를 만든 PD를 공영방송 사장으로 앉혔다. 당시 대법원은 PD수첩 보도가 가짜뉴스라 판결하면서도 ‘언론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인정해 죄는 묻지 않았다. 그만큼 가짜뉴스의 처벌과 폭넓은 표현의 자유 사이에는 불가피한 긴장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엄밀한 의미에서 가짜뉴스인 허위조작 기사를 넘어 과장 뉴스나 쓴소리 뉴스까지 손보겠다는 것이라면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가 된다. 그 정치적 의도 때문에 성공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만일 유튜브에서 보수가 주도권을 잡는다 해서 이를 규제하려는 요량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자유 없는 민주주의’로 발걸음을 떼는 것이다.

재판 거래 의혹을 다루기 위한 특별재판부 설치도 그렇다. 사법부 불신을 정치권이 부추기는 꼴이다. 안 그래도 양심과 법률에 따른 판결이 아니라 정치적 성향과 이해관계로 판결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형국에 사법부를 대놓고 기득권 집단으로 몰아세워 버렸다. 입법부의 사법부에 대한 견제 또는 감시 기능은 인사에 대한 동의권이나 탄핵권, 예산에 대한 심의를 통해 보장되어 있다. 혁명적 상황 아래에서 딱 한 번 있었던 특별재판부를 유무죄 다툼이 치열한 사안에 대해 굳이 도입하겠다는 의도는 무엇인가. ‘유죄 내릴 판사’를 미리 선정하겠다는 것인가. 대법원이 의혹에 관련된 판사를 재판에서 제척해도 충분하고, 그래도 의심되면 검찰이 제척 사유를 제기해 바꾸면 될 일을 정치적 시민단체들까지 관여하는 입법을 하겠다는 것은 사법부를 무력화하는 일로 비치기에 충분하다. 이에 대해 대법원장이 말 한마디 못하는 것도 권력에 발맞추는 사법부의 풍경을 보여준다. 사법권 독립과 양심과 법률에 의한 재판을 보장하는 것은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다. 사법농단 엄벌이라는 프레임으로 재판 결과를 예정하는 것이야말로 ‘공화 없는 민주주의’로 후퇴하는 길이다. 정말 민주주의자들답게 국정을 운영했으면 좋겠다.

박형준(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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