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는 민주화 소식을 싣고∼ 그때 그 역사 보존하고 알린다

NCCK ‘인권소식’ 등 보관 사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위탁키로

주보는 민주화 소식을 싣고∼  그때 그 역사 보존하고 알린다 기사의 사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손승호 간사가 31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수장고에서 꺼내 온 인권소식 영인본을 가리키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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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갱지에 구식 타자기로 조악하게 인쇄됐다. A4 용지 두서너 장으로 묶인 유인물 형태로 목요기도회 때마다 예배순서지와 함께 주보로 배포됐다. 이 소식지가 유신독재 시절 긴급조치 9호를 뚫고 거의 유일하게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전한 매체였다. 주보 형식을 갖췄기에 살아남았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위원회의 ‘인권소식’ 이야기다.

NCCK는 31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수장고에 있는 인권소식 영인본을 국민일보에 공개했다. 인권소식은 1978년 6월 처음 발행됐다. 광고탄압을 통해 비판적인 언론인을 대량 해직시키고 신문사 편집국에 기관원을 상주시켜 정권 입맛대로 지면을 가위질하던 시절이었다.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만으로도 영장 없이 구속이 가능토록 만든 긴급조치 9호는 9호 위반 행위를 보도하는 것도 구속 사유로 삼았다.

무소불위의 독재정권도 예배를 보기 위한 주보 발행까지 막을 순 없었다. 종교탄압은 국제사회의 여론 악화를 불러왔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교회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인권소식은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목요기도회 혹은 금요기도회에서 배포돼 기성 언론이 보도하지 못한 정부의 인권 및 민주화운동 탄압과 긴급조치 위반 연행자 관련 뉴스를 전했다. 주보가 곧 언론이었다.

1979년 3월 2일자 톱기사는 ‘3·1절 연금’이다. 첫 문장은 “3·1절을 전후하여 또다시 강제 연금사태가 발생했다”로 시작한다. 이어 “상부의 지시에 따라 경찰은 ⑴자택연금 ⑵강제동행여행 등의 방법을 취했다”고 적었다. 이어 김대중 윤보선 전 대통령, 이희호 여사, 이문영 고려대 교수, 한완상 서울대 교수, 김상근 문동환 서경석 이우정 이해동 조남기 목사 등 연금자 59명의 이름이 나온다. 박정희정권은 1976년 3월 1일 재야 정치인과 기독교 인사들이 중심이 된 유신체제 최대 반정부선언 사건인 ‘3·1 민주구국선언문’ 발표 후 해마다 강제연금을 되풀이해 왔다.

소식지는 그해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으로 구속된 강원룡 목사의 근황, 세계시인대회에서 ‘한국의 시는 죽었다, 구속문인 석방하라’는 펼침막을 내보여 연행된 소설가 이문구 송기원, 시인 이시영 이종욱 이진행 정희성 등 문인들의 소식, 유신정권 붕괴의 시작점이던 YH무역사건 등을 전했다. 그러나 10·26 사태로 계엄령이 선포되며 발행이 중단됐다. 1983년 복간돼 정식 인쇄본으로 민주화운동에 기여했다. 88년 언론자유화 이후 역할이 축소되자 98년 발행을 마무리했다.

한국기독교 인권운동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NCCK 손승호 간사는 4년간 이 문서들을 정리했다. 손 간사는 “권위주의 정부가 강요하는 국가주의에 맞서 인간의 목소리가 담긴 낡은 종이들을 마주할 때 가끔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NCCK는 1일 인권소식을 비롯해 오재식 전 월드비전 총재와 홍근수 목사 관련 기증 사료 일체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위탁하는 협약식을 진행할 계획이다. 손 간사는 “보존 문제로 전문연구자들에게조차 공개가 어려웠던 사료들이지만 모두 디지털화해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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