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손인웅 <7> 연탄가스에 중독… “주여” 세 번 외치고 쓰러져

대학1학년 말 입주 가정교사 생활 중 죽음 문턱 다녀온 후 복음의 삶 살아

[역경의 열매] 손인웅 <7> 연탄가스에 중독… “주여” 세 번 외치고 쓰러져 기사의 사진
손인웅 목사(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1963년 2월 24일 대구 대봉교회 주일학교 졸업식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시작된 정치적 소용돌이, 그 속에 푹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1학년이 지났다. 그나마 다행인 건 2학기에 들어서면서 대구 시내에서 가장 큰 예식장 사장 집에 입주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난 그 집 본채와는 꽤 떨어져있는 독립공간에서 지냈다. 운명의 날은 12월 26일이었다. 책상 앞엔 큰 창문이 있었다. 늘 그곳에서 공부하고 책을 읽었다. 아이들 과외도 그 자리에서 했다. 그 날도 책을 읽고 있었다. 매섭게 추웠던 겨울밤이었다. 자정이 가까워왔는데 갑자기 몽롱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지러웠다. 시야도 흐려졌다. 힘겹게 창문을 열기 위해 놋쇠 잠금장치를 돌렸던 기억이 아련히 난다. 그 순간 잠금장치가 십자가로 보였다. 그리고 난 “주여”라고 세 번 외쳤다. 실제 소리를 냈는지 아니면 내 마음이 그랬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난 그 순간 주님을 불렀다. 그리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고, 선생님 아잉교. 젊은 사람이 와 이래 쓰러져있노. 일로 오소, 일로.” 다급한 목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렸다. 아이들 할머니가 산책을 하다 날 발견한 것이었다. 난 연탄가스에 중독됐다. 그땐 연탄가스에 중독되면 동치미국물을 먹였다. 몇 사발을 마신 뒤에야 병원으로 옮겨질 수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 다녀오니 주님 생각만 났다. 정신을 잃기 직전 보았던 십자가와 ‘주여 삼창’. 그건 내가 보고 내가 외친 게 아니었다. 주님이 그렇게 인도해 주신 것이었다. 몸을 꼬집어 봤다. 아팠다. “내가 살았구나. 살았대이.” 그리고 터져 나온 눈물, 죄인의 눈물은 서럽고도 길었다.

마침 입주교사를 하던 집 사장님이 대구 대봉교회 안수집사셨다. 그 주에 바로 대봉교회에 나가 등록했다. 맨 앞에 앉았다. 박맹술 목사님이 강단에 서셨다. 그날 설교 본문은 창세기 28장이었다. 야곱이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 담긴 본문이었다. 날 위한 말씀이었다. 그날 난 과거의 난 죽었으니 이제 새 삶을 살겠다고 기도했다. 방황은 끝났다. 그날부터 모든 예배는 내게 부흥회와 같았다. 뜨거웠다. 경북대와 대봉교회는 걸어서 1시간 이상 걸린다. 그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다. 교수님이 늦게 오시는 날엔 강의실 앞에 나가서 “예수 믿으시오”라고 외쳤다. 수백 명 모인 큰 강의실에서도 어김없이 앞으로 나갔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수군거렸다. “저 예수쟁이 미친놈 또 나왔다.” 날 예수쟁이라고 봐주다니, 기뻤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경험을 한 것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복음에 빠진 자의 삶은 행복으로 가득하다.





기독학생운동에 참여하기로 한 것도 이때였다. 1959년은 장로교가 통합 측과 합동 측으로 분열된 해였다. 그 여파가 모든 교회와 대학 기독학생회에 미쳤다. 서로 어느 쪽인지 물었고 답 없는 싸움을 했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 선교의 문을 막는 일이라 생각했다. 난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과 한국대학생선교회(CCC) 활동을 동시에 시작했다. 진보와 보수를 대변했던 대표적 기독교 단체에 가입한 것이었다. 아군이면서 적군인 날 곱게 볼 리 없었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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