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 범죄·각종 비리·갑질… 도덕적 위기의 시대 기독교인에게 선한 삶의 의미

인간의 윤리적 의무와 능력 사이에 존재하는 도덕적 간극 메우려면

잔혹 범죄·각종 비리·갑질… 도덕적 위기의 시대 기독교인에게 선한 삶의 의미 기사의 사진
독일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1526년 작품 ‘아담과 이브’.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Web Gallery of Ar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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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선한 삶을 살 수 있는가?/존 헤어 지음/정원호 옮김/새물결플러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이 시대가 얼마나 심각한 도덕적 위기에 처했는지 보여준다. 강서구 PC방 사건처럼 분노를 참지 못해 일어난 잔혹한 범죄, 사립유치원 비리와 기업 회장의 갑질 등 쏟아지는 사건을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착하게 살아야 할 이유와 그 의미마저 퇴색해가는 지금. 바로 이 시대가 이 책 ‘우리는 어떻게 선한 삶을 살 수 있는가’(새물결플러스)를 펼쳐야 할 이유가 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저자 존 헤어는 미국 예일대에서 철학적 신학을 가르치는 철학자이자 고전 윤리학자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가 어떻게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다.

그는 먼저 인간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의무와 실제 인간의 능력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도덕적 간극’에 주목한다. 그는 도덕적 간극을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요소 없이 해결하려는 세 가지 시도가 있다고 소개하며 각각을 분석한다.

첫째, 인간의 능력을 과대포장하는 경우다. 두 번째는 인간의 도덕적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거기에 맞춰 도덕적 요구를 줄이는 것이다. 세 번째는 마르크스이론 등을 토대로 간극을 줄이려는 시도다. 그는 세 가지 사례가 갖는 한계를 지적한 뒤 간극을 줄이는 방법을 하나님의 도우심에서 찾는다.

도덕적으로 선한 삶을 살기 위해 속죄, 칭의, 성화라는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를 살펴본다. 현실에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짓는 모습 때문에 칭의 교리가 도덕적 간극을 해소해주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저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우리가 그와 같은 존재가 아직 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미 그와 같은 존재가 된 것으로 우리를 보실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면, 우리는 도덕적 간극이 어떻게 이미 메워질 수 있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내적 요소에 이어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악과 비극적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다룬다.

선한 삶을 사는 게 가능한 것임을 확인했다면, 다음은 왜 선하게 살아야 하는지 살펴볼 차례다. 선하게 살도록 하는 도덕적 권위가 도덕적 인식, 인간의 본성, 인간의 이성, 공동체로부터 부여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면서 ‘도덕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그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힘보다 사랑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에 ‘명령’이라는 말보다 ‘부르심’이라는 말을 선호한다”고 부연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인간의 자율성을 점검한다. 인간이 어떤 한계를 갖고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는 실행할 수 없는 사랑을 향한 열망을 가진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미국에서 2002년 발표된 이 책은 16년이라는 시차가 존재하지만 세속화와 탈종교 바람이 거세지는 지금 오히려 더 유용하게 읽힐 듯하다. 책이 발표되고 지금까지 미국 사회에선 무신론자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저자의 주장과 같이 기독교를 근간으로 하는 도덕성과 ‘무종교적 도덕성’ 사이에 논쟁이 치열했다.

최근 국내에 소개된 미국 사회학자 필 주커먼은 저서 ‘종교 없는 삶’에서 “신을 믿지 않으면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없는 걸까”라는 도발적 질문을 던진 뒤 답을 내놓는다. 무종교인에게 ‘선’은 곧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타인을 대하라는 ‘황금률’이며, 이는 기독교에서 가르치기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이다.

무종교적 도덕성은 ‘공감에 의한 호혜’라는 황금률로부터 비롯되며 인간의 근본적인 공감 능력을 통해 이뤄낼 수 있기에 “어떤 철학적 증거나 이론적인 주장도, 논리적인 금언이나 성서의 이야기도, 신학적인 믿음도 필요하지 않다”고 단언하고 있다.

과연 이런 시대에 기독교인에게 선한 삶을 사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무종교적 도덕성과의 논쟁을 더는 피해갈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한국 기독교인은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헤어 교수의 책은 이런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느 쪽으로 걸어야 할지 알려주는 표지판이 될 법하다.

강영안 서강대 명예교수는 추천사에서 “존 헤어는 현존하는 도덕 철학자 중 ‘하나님의 명령 윤리’를 가장 분명하고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철학자”라며 “이 책을 통해 도덕이 어디에 근거를 두는지, 도덕적 의무의 요구와 우리 능력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지, 우리가 어떻게 선을 추구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를 제대로 배울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고 적었다.

곁들여 읽어 볼 책

성경 속 선과 악, 21세기 현실의 윤리와 접점 찾기
원함과 행함/자끄 엘륄 지음/김치수 옮김/대장간


기독교인들은 인간의 원죄와 타락, 구속 교리를 믿기에 대체로 선악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성경 속 선과 악이 진정 무엇인지, 그것이 21세기 현실 사회 속 윤리와 어떻게 접점을 찾는지 등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종종 세상의 도덕 기준에 못 미치는 주장을 ‘하나님의 뜻’이라 외치는 사람을 만나고, 세상에서 선하다고 말하는 것들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지 못하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20세기에서 방황한 21세기의 사상가’로 불리는 프랑스의 자끄 엘륄의 ‘원함과 행함’은 바로 이런 주제에 대한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이다. 엘륄은 하나님에 의한 선의 계시와 인간이 만든 도덕이 상호 대립한다고 지적한다. 기독교인은 기독교 윤리를 더 큰 것으로 간주하고 세상의 도덕은 최소한의 도덕 정도로 여기거나 ‘기독교 도덕을 실천하면 사회가 인정한다’는 식의 절충적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기독교인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인간 수준으로 낮춰버린 ‘기독교 윤리’는 그 자체로 기독교에 반역이 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에게 윤리는 불필요하단 말인가. 엘륄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엔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경우가 적잖고, 또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이 제멋대로 해석할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기독교 윤리’가 일정 부분 필요하다고 수긍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윤리의 실천 가능성 대목에서 그리스도인은 가로막힌다. 실천은 곧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엘륄은 “하나의 기독교 윤리란 있을 수 없다”며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을 위한 하나의 윤리를 기술하는 것 뿐”이라고 결론 내린다. 우리에게 ‘원함과 행함’을 불러일으키는 분은 인간의 자율성을 뛰어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엘륄은 기술과 소외라는 주제에 대한 사회학적 비판과 기독교 윤리와 자유라는 신학적 사유를 날줄과 씨줄 삼아 자신만의 사상을 쌓아올린 인물이다. 이 책은 ‘자끄 엘륄 총서’의 30번째 책이다. ‘기독교 윤리의 신학적 비판’이라는 부제대로 기독교 윤리의 불가능성과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논증해간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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