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손인웅 <8> 교내 기독교 진보-보수 두 단체 회장 맡아 화합 노력

교단 분열로 진보-보수 등 돌렸지만 캠퍼스 내 연합모임 갖고 함께 기도

[역경의 열매] 손인웅 <8> 교내 기독교 진보-보수 두 단체 회장 맡아 화합 노력 기사의 사진
1960년대 경북대 본관 앞에서 학생들이 대화하고 있다. 나는 캠퍼스 안에서 기독교인들이 하나 되게 하는 일에 힘쓰며 화해와 일치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1959년 교단 분열의 여파는 컸다. 한 교회에서 오랜 세월 친하게 지내던 이들이 등을 돌렸다. 통탄할 일이었다. 어른들이 벌인 싸움이 모든 세대로 확산됐다. 캠퍼스도 마찬가지였다. 진보와 보수 단체가 서로 등을 졌다.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전도의 문이 막힌다고 생각했다. 시간만 나면 전도를 하던 내가 아니던가. 갈등과 다툼을 목전에 두고 보는 건 너무 고통스러웠다. 61년 대학 2학년이 되면서 교내에서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과 한국대학생선교회(CCC) 활동을 시작했다. KSCF는 진보적 기독교 단체였고 CCC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단체였다. 극과 극의 단체에 가입한 것은 둘의 화합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두 단체에서 모두 날 경계했다. 곱게 보질 않았다. 그럴수록 열심히 활동했다.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은 하나였다. 기도도 하나고 예배도 하나였다. 결국 우리는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아닌가.

강의실과 두 곳의 동아리방, 교회를 오가는 삶이 시작됐다. 처음엔 경계하던 친구들도 내게 악의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동아리 회장은 3학년들이 맡았다. 난 두 단체의 회장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무모한 도전이었다. 주변에서도 걱정을 많이 했다. “인웅아, 니 괜한 일 벌이지 마래이. 결국 싸움만 부추길 끼다.”, “아인 기라.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 되기 위해선 이 길뿐인 기라.” 공부하고 싶어서 지게 부수고 가출했던 고집 센 나였다. 누가 뭐라고 해도 목표를 수정하지 않았다. “결정은 동아리 아∼들이 할 끼다.” 호언장담한 뒤 기도했다. 떨어지면 망신이었다. 화합시키려다 오히려 더 멀어지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다.

선거가 시작됐다. 개표 결과 두 단체 모두 날 회장으로 선택했다. 인사말이 잊히질 않는다. “교단이 분열됐심더. 마음이 아픔니더. 캠퍼스 선교단체들이 어른들 맹키로 싸워서야 되겠는교. 안됩니더. 우린 하나가 되입시더.”

나는 연합모임을 자주 가졌다. 여기저기서 ‘이상한 놈’이라는 비난이 있었다. 선배들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각자의 정체성이 있는데 그걸 깼다는 지적이었다. 내 생각은 달랐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원래 하나였는데 함께 만나 기도하고 찬양하고 나라가 처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이냐고 항변했다. 사실 내 말이 맞았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아니라면 누구와 하나란 말인가. 두 단체의 회장이 한 명이다보니 교류가 많아졌다. CCC 방에 가면 KSCF 회원들이 있는 식이었다. 그 전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우리는 두 단체의 연합 수련회에도 함께 갔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당연히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기회가 됐다.



무모해 보이던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때 경험은 내게 ‘화해’ ‘연합’ ‘일치’라는 가치의 소중함을 가르쳐줬다. 훗날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교단장협의회’의 원형이 경북대에서의 경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나의 목회가 화해와 화합에 맞춰진 것도 모두 이 시절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