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권기석] 1면 자살보도 금한다고? 기사의 사진
지난 9월 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원회실. 국회의원 9명과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모여 법 개정안 여러 개를 논의했다. 백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자살예방법 개정안’이 그중 하나였다. 이 법안은 ‘자살 보도는 신문 1면이나 뉴스의 첫 순서 등이 아닌 쉽게 알 수 없는 위치나 순서에 배치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자살 소식을 신문 1면에 쓸 수 없게 된다. 의원들은 이 법안을 두고 어떤 말을 쏟아냈을까. 그들의 언론관이 드러난 회의록 일부를 옮겨 본다.

“언론에 보도지침이라든가 이런 부분을 권고를 한다고 해서 그들이 말을 들을까요? 언론을 모방해서 자살의 사례가 많이 늘고 이런 부작용이 아주 많지만 그러나 단지 그것을 권고한다고 했을 때 효율성이 있을까요?”(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

“기자협회가 원하기는 아직까지 자율적으로 할 테니까 그런 세미나를 통해서 내용을 좀 많이 알려 달라 그런 상황입니다.”(권준욱 복지부 건강정책국장)

“언론이 워낙에 고집이 있는 집단이 되어 가지고 그것을 잘 설득하시고 관계부처에서 잘하셔야 될 것 같아요.”(김 의원)

(…)

“지금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 중에서 제일 안 되는 것이 자살 예방 프로젝트 아닙니까. 현실적으로? 그러면 보건복지부 입장에서는 더 강하게 나가서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다만 위원회에서 허가를 받은 경우에 한해서 보도할 수 있다’ 이렇게 나가야 정상적인 게 아니냐는 거지.”(맹성규 민주당 의원)

“이 부분은 언론의 자유하고 상위 헌법상의 문제하고도 좀 검토….”(권덕철 복지부 차관)

“아니, 이게 무슨 언론의 자유하고 관련 있어요?”(맹 의원)

(…)

“저는 심정 같아서는 백재현 의원안 플러스 알파 이렇게 하는 게 맞는다고 보이는데, 이제 이런 구체적인 기준을 언론 스스로가 좀 마련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수년 내에 실질적인 개선책이 없으면 좀 더 과감한 입법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한번 범퍼링(충격완화) 정도를 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을 합니다.”(기동민 민주당 의원, 소위원장)

의원들은 이날 결론을 내지 못하고 보름 후 소위원회에서 수정안을 채택했다. 신문 1면이나 방송 뉴스 첫 순서에 자살 보도를 실을 수 없다는 조항은 삭제했다. 대신 5년마다 수립하는 자살예방기본계획에 자살 보도 기준을 넣도록 법을 고치기로 했다. 지금은 자살 보도 기준이 중앙자살예방센터의 권고로만 돼 있다.

우려스러운 건 회의에서 드러난 의원들의 시각이다. 발상도 어이가 없지만 ‘허가를 받아야 보도할 수 있다’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 충격이다. 군사정권 시절 언론통제 전략을 짠 회의가 이와 크게 달랐을까. 언론의 자살 보도에 문제가 있는 건 맞다. 유명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되풀이되는 경쟁적, 선정적 보도와 모방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구체적 보도는 분명히 문제다. 생명권 보호 차원에서 자살 보도는 바뀔 필요가 있다. 하지만 생명권 보호와 언론의 자유는 똑같이 중요한 가치다. 둘 중 어느 하나를 위해 한쪽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

이 일에 더해 최근 정부와 여당이 가짜뉴스근절법을 만들겠다고 나선 일을 상기해보면 정치인에게 언론의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SNS의 시대에도 정치인은 여전히 언론을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다른 가치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희생시키는 것은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 보인다.

정치인의 그릇된 언론관은 심각한 폭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은 언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정치의 사고가 극단에서 표출된 사례다.

권기석 사회부 차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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