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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춘섭] 하도급 불공정행위 근절해야

[기고-박춘섭] 하도급 불공정행위 근절해야 기사의 사진
우리 사회의 불공정성을 드러내는 갑질 논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몇 년 전 재벌 관련 갑질 행태를 소재로 한 영화 ‘베테랑’이 인기몰이를 한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일자리를 잃고 1인 시위를 하던 화물차 기사를 불러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극단적인 갑질을 다루고 있다. “살려 달라”고 몸부림치며 쓰러진 화물차 기사에게 매 맞은 대가라며 수표 몇 장을 던져주는 장면을 보고 관객들이 더더욱 공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에는 한 공기업 직원이 아버지뻘 되는 공사 현장의 하도급 업체 직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이 공개돼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메시지에서 “집합, 안 오시면 현장 퇴출자 1호로 선정” “억울하시면 계약 특수조건을 보세요” 등으로 은연중 지위를 앞세우거나 하도급 업체에 회식비를 떠넘기는 등 역시 갑질이 문제가 됐다.

공사 지시와 대금 지급 과정에서의 불공정행위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건설공사나 소프트웨어 사업의 ‘발주처→원도급자→하도급자→노무자’로 이어지는 사슬 속에서 부당한 과업 전가나 추가 업무 지시, 공사대금 미지급, 임금체불 등 불공정행위가 발생한다. 원도급자가 하도급자에게 이면계약을 요구하거나 일방적으로 단가를 인하하는 갑질 행위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아직도 원도급자와 하도급자 간에는 협력적 관계보다는 원도급자의 우월적 태도가 남아 있다.

공공조달시장이 선도적으로 불공정한 계약문화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조달청은 사회적 약자인 하도급 업체, 근로자 등에 대한 대금 지급 과정을 발주자들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하도급지킴이’를 구축해 2013년부터 운용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하도급 대금이나 임금 체불을 예방하기 위해 공사대금을 전자적으로 투명하게 지급하도록 구축됐다. 또한 원도급사는 받은 대금 중 본인 몫이 아닌 노무자의 임금이나 하도급 대금을 인출할 수 없도록 했다. 이로 인해 그동안 하도급 관리 과정이 수기로 처리되고 체계적인 관리가 어려워 발생했던 어음 결제, 정산 지연 등 갑질 행태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하도급지킴이를 이용하고 있는 한 발주기관 관계자는 “자금난이 일상화되어 있는 공사 현장의 중소업체나 근로자들은 매시간 살얼음판을 걷는다”면서 “하도급지킴이 도입 이후 대금 지급이 투명해지고, 지급 날짜도 평균 이틀 이상 빨라졌다”고 변화된 공사 현장 모습을 설명했다.

하도급지킴이가 사회적 약자 보호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이용 실적도 급증하고 있다. 공공공사 중 하도급지킴이 이용 비율은 2014년 7%에 불과했던 것이 2015년 11.1%, 2016년 20.9%, 2017년 43.0%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이와 병행해 외국산 제품을 국산으로 속이는 원산지 위반, 허위서류 제출, 그리고 규격미달 제품 납품 등 공공조달시장의 불공정한 조달 행위에 대해서도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조달청이 지난해 2월 불공정 조달 행위 근절을 위해 2개 전담과를 신설한 이후 최근까지 모두 550여개 조달 업체를 조사해 300개 업체를 적발했다. 이 과정에서 불공정 업체가 취득한 부당이득에 대해 모두 214억원을 환수할 수 있었다. 원산지 위반 등 불공정 조달 행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관세청 등 관련 기관과의 공조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시설공사를 포함한 공공조달시장 규모는 130조원을 웃돈다. 공공조달시장이 앞장서서 불공정행위를 개선해 나간다면 민간부문에 미치는 영향력도 클 수밖에 없다. 조달청은 특히 하도급지킴이 이용 확산을 위해 발주기관과의 유대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하도급지킴이가 모든 공공부문으로 확산된다면 불공정 하도급 관행을 개선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근로자들이 상생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한다.

박춘섭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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