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손인웅 <10> 두 번째 죽음 체험 후 필사적 기도 끝에 목사 서원

CCC 수련회 갔다가 익사 위기 넘겨, 주님이 이끄신다고 확신… 성령 체험

[역경의 열매] 손인웅 <10> 두 번째 죽음 체험 후 필사적 기도 끝에 목사 서원 기사의 사진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창립한 김준곤 목사가 1960년대 초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김 목사는 1958년 CCC를 세우고 캠퍼스 선교에 앞장섰다.
대학교 3학년이던 1962년 여름까지만 해도 난 신앙 좋은 대학생일 뿐이었다. 졸업 후 빨리 국어교사로 발령 받아 교편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그해 8월 대구와 부산 지역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연합수련회가 부산 해양대학교에서 열렸다.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다. 등록을 마치자마자 친구들과 해양대 본관 아래에 있는 아치해변으로 뛰어 들었다. 신나게 놀았다.

그런데 웬일인가. 파도가 강해지고 있었다. 주변을 보니 바다를 잘 아는 부산 친구들은 벌써 해변으로 몸을 피했다. 대구 친구들과도 3∼4m 떨어져 있었다. 바다에 홀로 남겨진 것이었다. 이미 발이 닿지 않았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겁을 먹었다. 살려달라는 말도 나오질 않았다. 상황이 심각했다. 파도가 날 덮치고는 조금씩 먼 바다로 끌고 나갔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빠져 나오기 힘든 파도가 반복됐다. 짠물을 먹지 않으려고 입을 꽉 다물고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날 부르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물에 떠 있다가는 절대 나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바닥으로 내려가 기어보기로 했다. 2m가 채 되지 않았지만 파도가 칠 때마다 더 깊어지는 것 같았다. 돌이 많은 바다였다.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돌을 움켜잡았다. 숨이 차면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해변 가까이까지 기어갔다. 기진맥진한 나를 파도가 해변으로 밀어 올렸다. 거친 돌이 온몸을 할퀴었다.

친구들이 달려와 날 업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희한하게도 연탄가스에 중독돼 ‘주여’ 삼창을 하던 대학 1학년 겨울이 떠올랐다. 정신을 차려보니 해양대 간호실이었다. 두 번째 죽음 체험이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상처만 치료하고 기력을 회복했다.

운명의 시간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CCC 대표 김준곤 목사님이 집회에서 말씀을 전하셨다. 우리에겐 우상과 같은 분이셨다. 절규하듯 말씀을 전하시던 목사님이 강당 한쪽에 펼쳐져 있던 우리나라 대형 지도를 가리키셨다. 무슨 일인지 몰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선교할 지역에 가서 서십시오.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기도합시다.” 그때 나는 북한 지역 어딘가에 섰다. 우린 서로를 부여잡고 기도했다. 동역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기도가 터져 나왔다. 기도를 하면서 두 차례나 죽음 체험을 하게 하신 일이 모종의 사인처럼 느껴졌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날 이끄신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변했다.



그날 난 강력한 성령체험을 했다. 기도하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났다 쓰러졌다. 필사적인 기도 끝에 목사가 되겠다는 서원을 하게 됐다. 두 차례의 죽음 체험 끝에 목사가 되겠다는 기도가 터져 나온 것이다. 그날 함께 기도한 친구들이 있었다. 무려 여덟 명이 목사로 서원했다. 그들 중 설삼용(안양제일교회) 김호일(서소문교회) 오창학(신촌교회) 원로목사가 기억난다. 이들은 그날 목사가 되겠다고 기도했고 그 길을 함께 걸었다. 이제 신학대학원에 입학해야 했다. 안정된 국어교사를 버려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효령면에 계시는 부모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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