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손영옥] “임기는 언제까지입니까” 기사의 사진
지난 아시안게임 때 ‘베트남의 히딩크’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보여준 성공 신화는 감격적이었다. 축구 약체로 평가받는 베트남에 2018 아시안게임 4강을 선물하면서 그는 국민 영웅이 됐다. 우리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네덜란드인 거스 히딩크를 수입한 지 17년 만에 한국인 감독을 수출하게 된 것이다.

‘미술계 히딩크’로 불리며 외국인으론 처음 국립현대미술관 수장을 맡은 스페인 출신 바르토메우 마리 19대 관장이 12월 13일로 3년 임기를 끝낸다. 나는 그가 오기 전에 외국인 관장 임명 찬반을 묻고, 올해 초 그가 연임 의사를 피력한 뒤에는 연임 찬반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하며 기사화한 바 있다. 처음엔 압도적인 반대가 있었지만, 2년여 시간이 흐른 시점에 연임을 묻는 설문에선 반대가 절반으로 줄었다. 외국인 수장에 대한 거부감은 누그러져 있었다.

공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것이다. 그가 관장으로 있는 동안 패거리 문화가 덜해진 덕분에 직원들의 표정은 한결 편해 보였다. 애초 그를 영입한 이유도 파벌 갈등에 치인 정부가 서울대도, 홍익대도 아닌 수입산이 낫다며 선택한 측면이 있었다. 말단 큐레이터와 직접 소통하는 등 수평적 리더십이 돋보였다는 직원도 있다. 국제적 네트워크가 전시 성사에 발휘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례로 한국·일본·싱가포르 3개국이 공동 기획한 전시 ‘세상에 눈뜨다-아시아 미술과 사회’는 이미 지난 10월 일본 국립근대미술관에서 개막한 데 이어 내년에는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반면에 12월 말 국립미술품수장보존센터를 갖춘 청주관이 개관하지만 이와 관련한 예산과 인력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점은 비판받는 대목이다. 스스로 역할을 ‘큐레이터 관장’으로 한계 지은 탓도 있겠지만, 국내 네트워크 부족 탓이 더 컸을 것이다.

마리 관장이 준 선물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봤다. 우선 우리도 외국인 관장을 한번 써봤다는 기분이다. 이는 우리 안의 서구 콤플렉스를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 외국인 관장이 오면 확 바뀔 거라는 환상은 더 이상 가지지 않을 수 있게 됐다. 그는 히딩크처럼 전 국민이 열광할 홈런을 날리지 못했다. 미술이라는 게 홈런을 날릴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드는 철학과 시스템의 문화다. 속 시원한 홈런 한방은 한국인 관장도 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그가 연임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점은 중요하다. 그 결과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의 연임 문제, 또 짧은 임기 문제가 미술계에 담론화로 이어진다면 그것이 가장 큰 기여라 생각한다. 그는 지난 9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연임 불가 통보를 받은 이후 연속성과 안정성이야말로 미술관의 성공조건이라고 피력하기도 했다.

역대 관장 가운데 연임 사례는 드물다. 온전히 임기를 채운 연임 사례는 김윤수 관장 한 명뿐이다. 마리 관장은 현행 3년은 너무 짧다는 점을 인터뷰 등에서 강조했다. 공립미술관 관장 출신 A씨도 “한국 미술의 국제화를 원한다면 짧은 임기는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미술 전시는 수년 동안 준비해 이뤄진다. 임기 첫 해와 둘째 해는 전임 관장이 남긴 설거지 하기 바쁘고, 3년째에야 뭘 해 볼 수 있는데 그때 관장이 나가기 때문이다.

이웃 일본만 해도 관장 임기가 기본 5년이며 연임을 통해 10년씩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A씨는 “같이 국제적인 미술 전시를 하면 저쪽에서 ‘당신 임기는 언제까지입니까’를 먼저 묻는다. 한국은 국립은 물론 공립 미술관장도 정치 바람을 타고 자주 교체돼 신뢰를 안 한다”고 토로했다. 정치권 정서가 전문가 사회를 흔들어 아마추어 사회로 만든다는 일갈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내년에 개관 50주년이다. 관장 임기 문제를 숙고할 시점이 됐다. 축구에서 박항서를 수출한 것처럼, 미술로도 관장을 수출하는 때가 왔으면 싶다.

손영옥 문화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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