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시간] 시간, 지배당하지 말고 화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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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것은 특정한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우린 매일 조금씩 나이들어간다. ‘젊음이 떠난 자리에 지혜가 남기를’ 바란다면 오늘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살아야 한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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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시간이 흐르면 노인이 된다. 이런 삶의 변화를 미리 직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만일 우리가 스무 살 때 예순 살에 갖게 될 얼굴을 본다면 놀라 자빠질 것이며 그 얼굴에 두려움을 갖게 될 것이다. 다행히 노화의 속도는 조금씩 진행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똑같은 속도로 살지 않는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노년은 건강, 유전, 환경, 감정, 과거의 습관, 생활수준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빨라지거나 지연된다.

최근 한 보험사가 고객의 30년 후 모습을 보여주는 ‘인생사진관’ 광고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2주 만에 400만 뷰를 훌쩍 넘겼다. 영상은 친구 같은 모녀,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5년 차 부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온 친구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인생사진관을 방문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모두 실제 커플, 모녀, 친구 관계다. 전문 분장사의 손길을 통해 30년 후의 모습으로 변신해 사진을 찍은 이들은 예기치 못했던 감정을 내비치며 눈물을 보였다.

부부는 훌쩍 늙어버린 서로를 바라보며 “너무 속상해서 못보겠어…왜 이렇게 늙었어”라고 말을 잇지 못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늙은 엄마를 보는 딸은 마음이 아픈 듯 웃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 영상이 뜨거운 공감을 얻는 것은 우리가 놓치고 사는 인생의 소중함을 일깨워줬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시간의 속도를 거스를 수 없다. 인생의 가장 큰 실수는 ‘나는 늙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 그 사실을 노인이 된 후에 깨닫는 것이다.

영혼의 나이테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가 시몬느 보부아르는 저서 ‘노년’에서 노년의 시간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노인들은 청년기에 가졌던 인간의 자질과 결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하고 여론은 이 사실을 모르는 채 한다. 그는 이런 회피는 사회적 금기를 만들어낸다며 ‘침묵의 공모’를 깨야 한다고 말한다.

“젊은이들과 똑같은 욕망, 감정, 요구 등을 표명하는 노인들은 사람들의 빈축을 사게 된다. 노인들의 사랑과 질투는 추하거나 우스꽝스럽고, 성행위는 혐오스러우며 폭력은 가소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노인들은 모든 미덕의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한다…사람들이 노인들에게 요구하는 승화된 이미지는 백발의 후광에 싸인 경험이 풍부하고 존경할 만한 인간, 인간 조건을 저 높은 곳에서 굽어보는 현자이다. 그런 이미지에서 조금만 멀어지면 노인들은 형편없이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진다.”(시몬느 보부아르의 ‘노년’ 중에서)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인생 여정이 내게도 다가온다는 자각이다. 젊은 날에 비해 노동력과 경제력이 떨어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물질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정신·영적인 의미로 채울 수 있어야 한다. 이 시기에 처한 대부분의 사람은 영적 가치나 의미에 의해서만 충족될 수 있는 ‘실존적 공간’을 갖고 있다.

이를 채우기 위해 영혼에 자양분을 제공해 줄 놀이와 여가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묵상과 성경 읽기, 기도 등으로 지친 영혼을 어루만져줘야 한다. 그것은 바로 나의 영혼의 지문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며 ‘영혼의 나이테’를 만드는 방법이다. 즉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나이테를 늘려가는 것이다.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훨씬 더 젊게 산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이제 육체적 주름을 세지 말고 영혼의 나이테를 세어보자. 연륜 있는 나무가 수십 겹의 나이테를 소유하듯 정신적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강화될수록 우리 영혼의 나이테가 한 겹 한 겹 늘어갈 것이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시 92:14∼15)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욥 12:12)

노년기의 특징은 분명히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정신적, 육체적인 쇠약과 은퇴의 단계를 가리킨다. 생물학적인 노년의 삶은 전도서의 비유와 같이 허무한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때 노인의 백발은 약속된 하나님의 은총의 성취이며,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인식된다.

사람마다 다른 시간의 속도

이 땅에 존재하는 시간은 절대적이지만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시간은 상대적이다. 시간에 대한 체감, 즉 ‘심리적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날, 하루가 굉장히 길고 고단하게 느껴졌던 어떤 날의 기억이 있지 않은가. 한없이 즐거운 한때는 금방 지나가지만 고되고 지루한 시간은 무척이나 더디게 흐른다. 또 하루를 보내는 방식에 따라 하루가 길거나 짧아진다. 인간의 심리적 시간은 새로운 일일수록, 긴장도가 높을수록 더 길게 느껴진다.

‘시간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가’를 쓴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심리학과 로버트 레빈 교수는 “가장 바람직한 삶의 템포란 시간과 시간 사이의 균형을 찾아 자기 삶의 속도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라고 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졌으되,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이 시간의 흐름이라면 시간과 화해하는 유일한 길은 시간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늙음’이란 ‘젊음’이 끝난 후 별개의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여기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별개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노전(老前)생활’이란 말이 없는 것처럼 ‘노후(老後)생활’이란 말도 틀린 말이다. 우린 그저 계속 늙어가고 있을 뿐이며 산다는 것은 늙어간다는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인생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갈등을 정리하고 떠나지만 후자는 죽음에 대한 공포나 의심 소외 미련 속에서 고독한 죽음을 맞게 된다.

‘목회자들의 목회자’로 불린 영적인 거장 유진 피터슨은 ‘부르심을 따라 걸어온 나의 순례길’에서 “목사의 소명은 사람들이 좋은 죽음을 맞이하게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문화에 만연한 ‘죽음의 부정’이 이제는 교회에도 스며들어 와 있었다. 그러나 성경은 ‘날마다 죽노라’와 같은 비유적 의미에서든,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도다’와 같은 사실적 의미에서든, 죽음에 많이 집중한다…우리는 자기 마음대로 살려는 의지를 포기함으로써 죽음을 연습한다. 그러한 포기를 통해서만 우리는 부활을 살 수 있다.”(유진 피터슨의 ‘부르심을 따라 걸어온 나의 순례길’ 중에서)

평생 신자들에게 “말씀과 함께 살아가라”고 강조했던 유진 피터슨이 지난달 22일 별세하면서 남긴 마지막 말은 ‘레츠 고(let’s go)’였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라는 당부였던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 우린 마지막에 어떤 말을 남기고 갈 것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돼 있다. ‘젊음이 떠난 자리에 부디 지혜가 남기를’ 바란다면 오늘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

▒ 시간에 하나 더
“평균 수명 넘어서면 공직에 오르지 말 것” 나이 들면서 경계해야 할 것들


노년기는 육체적인 쇠락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창조적인 생활과 영적 생활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은혜의 시기이다. 75세까지 작곡을 하며 명곡을 남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82세까지 저술 활동을 했고 70세가 넘어서 ‘부활’을 탈고한 톨스토이, 76세의 고령으로 ‘파우스트’를 쓰기 시작해 80세가 넘어서 완성한 괴테 등을 보면 노년기는 인생의 하향기가 아니라 인격의 통합을 이루는 절정기임을 알 수 있다.

노년의 삶은 젊은 시절의 삶과 연속돼 있다. 노년이 돼 갑작스레 자기 개성을 찾고 발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노년은 젊어서부터 키워온 정신적, 경제적 자립의 기반 위에서 잘 준비돼야 한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경계해야 할 것들이 있다.

일본의 작가 소노 아야코는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에서 나이에 상관없이 대접 받는 것을 요구하는 사람을 노인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인들은 아주 적은 돈이나 물건, 시중에 이르기까지 받는 것에 대해 믿을 수 없을 만큼 민감하다. 이런 심리 상태가 모든 면에서 매우 심해지면 그것을 노화가 상당히 진행된 증거로 보아도 좋다”고 했다.

그는 노인이 잃지 말아야 할 마음 태세로 ‘모두가 친절하게 대해주면 늙음을 자각할 것’ ‘허울뿐인 인사치레는 포기할 것’ ‘교제 범위나 매너를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지 말 것’ ‘칭찬하는 말조차도 주의할 것’ ‘평균 수명을 넘어서면 공직에 오르지 말 것’ 등에서부터 소소하게는 ‘짐을 들고 다니지 말 것’ ‘저녁에는 일찌감치 불을 켤 것’ ‘자주 씻을 것’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물건을 줄여나갈 것’ ‘화장실 사용 시 문을 꼭 닫고 잠글 것’ ‘이사나 대청소 때 자리를 피해 줄 것’ 등을 제안했다.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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