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새에덴교회 나눔과 섬김] 세상에 선한 영향력 넓히는 선구자로

[새에덴교회 나눔과 섬김] 세상에 선한 영향력 넓히는 선구자로 기사의 사진
교회설립 30주년을 맞은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 전경. 2005년 건립된 지상 8층, 지하 3층 규모의 프라미스 콤플렉스는 개교회에 안주하지 않고 한국교회의 생태계를 보호하는 킹덤빌더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용인=강민석 선임기자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개교회주의에 안주하는 캐슬 빌더(Castle Builder)를 넘어 공교회의 회복과 부흥을 꿈꾸는 킹덤빌더(Kingdom Builder)가 된다.’ 이는 1988년 11월 창립예배를 드리고 시작된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가 지난 30년간 추구해온 목표다.

시대를 선도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선도자, 창조적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역할을 해온 새에덴교회도 초창기는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시작됐다. 여느 대형교회의 태동과 마찬가지로 비가 새고 쥐가 나오던 지하 82㎡(25평)의 서울 가락동 교회시절(개척기, 1988∼1994년)을 시작으로 지하 456㎡(138평) 성남 정자동 시대(도약기, 1994∼1996년)를 거쳤다.

이후 연건평 3404㎡(1030평)의 성남 구미동 중형교회 시절(부흥기, 1996∼2005년)을 거쳐 9982㎡(3020평)의 지상 8층, 지하 3층 용인 죽전 프라미스 콤플렉스(영향력 확장기, 2005년∼ )를 세우고 현재에 이르렀다.

새에덴교회의 강점은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설교, 축제의 예배에 있다. 본질은 예배의 생명력인데 이는 통회와 축제가 함께 조화되고 회개와 감격이 서로 어우러지는 데 있다.

소강석(사진) 목사는 생명력이 살아있는 예배를 위해 스스로 강단에서 ‘광대’가 됐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이라면 하나님의 광대가 돼 그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때론 엿장수가 되고 때로는 가수가 됐다. 하모니카와 뿔나팔도 불렀다. 다양한 설교 목록을 갖고 예배 시간별, 월별, 분기별로 식상하지 않게 다양한 주제와 창의적 메시지를 전하는 데 주력했다.

역동적이고 생명력이 있는 강단은 수많은 사람을 교회로 향하게 했다. 강단의 영적 깊이가 있다 보니 당시 집사신분이었던 문정남 은퇴장로와 김현숙 은퇴권사는 광주광역시에서 서울을 매주 오가며 예배를 드릴 정도였다.

김 은퇴권사는 “새에덴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영권이 살아나고 영혼이 소생하는 경험을 했다”면서 “영의 세계는 한계가 없는데 율법의 제단에서 크기를 바라보면 안 되고 오염되지 않은 하늘의 생수를 바라봐야 한다. 새에덴교회 강단에서 맑고 깨끗한 하늘의 만나를 접하고 성숙을 체험했다”고 강조했다.

문 은퇴장로도 “목가적 감성과 순수한 서정을 지닌 목사님이 설교준비만큼은 최선, 최고의 경지를 넘어 생명을 걸고 사투를 하는 경지에서 준비했다”면서 “그것이 순결하고 예리한 영성, 언제나 불꽃처럼 타오르는 열정적 헌신, 진실성으로 이어졌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교회는 가락동 개척 초기부터 지역 노인 200여명을 초청해 경로잔치를 개최할 정도로 남다른 시각과 관점이 있었다. 지역사회를 어떻게 섬길지 계획서를 만들어 홍보했으며 전도특공대 찬양전도단을 조직해 복음을 외쳤다. 100명이 출석하던 가락동 지하예배당 시절 예수사랑큰잔치를 개최하고 주일 9부 예배를 드리며 2500명을 끌어 모을 정도로 전도에 열정적이었다. 이런 전통에 따라 교회는 ‘송구영신예배-신년축복성회-상반기 전도축제-장년 여름수련회-하반기 전도축제’라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죽전 프라미스 콤플렉스 시대의 개막은 새에덴교회의 또 다른 도약을 가져왔다. 대형교회로 자리매김하면서 한국교회를 섬기고 사회공익을 위해 힘쓰는 플랫폼을 마련한 것이다. 6·25 참전용사 초청행사, 동성애와 이슬람 등 반기독교 문화 유입 저지, 종교인 과세 대응, 미디어선교 등을 통한 교회 이미지 제고 등의 사역에 주력하고 있다.

소 목사는 “새에덴교회는 반기독교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교회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창조적 퍼스트 무버로서 사역을 펼치고 있다”면서 “개교회를 넘어 공교회와 사회공익을 추구하는 민족성전을 향한 소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