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서울 은평구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6학년 여학생은 유서처럼 남겼다는 쪽지에 무슨 말을 적었을까.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이 ‘세상 살기가 너무 싫어 먼저 간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게 10년 전 10월이었다. 당시 이 어린이는 학교 성적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가 전보다 떨어진 중간고사 성적 때문에 크게 울었다는 주변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한 짐작이었다. 유서에 성적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 뒤로도 지금까지 전국에서 초등학생 수십 명이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 그때마다 성적 비관, 가정 문제, 따돌림, 학교폭력 등이 자살의 이유로 거론됐다. 그렇게 결론을 내려 뭐가 나아졌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렵다. 자살을 생각하거나 실행에 옮기는 어린이는 갈수록 늘고, 자살충동을 경험하는 연령대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10년 전 그 아이가 세상을 등진 이유가 성적 때문이었다고 단정해버려도 되는 것이었을까. ‘성적이 떨어진 걸 못 참고…’라는 설명은 엄연한 사회적 존재의 자기파괴 이유로 채택되기엔 너무 빈약하다. 성적 하락이 죽음의 방아쇠가 됐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제대로 된 진단은 아이가 성적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고 그 충동을 실행하기까지 한 환경을 다각도로 들여다봐야 한다. “세상 살기가 너무 싫다”는 말이 어떤 하나의 이유로 아이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자살은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들의 결과다. 적응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심리적·정서적 격동기를 보내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우울해하는 아이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한국방정환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2017년도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조사에서 자살 충동을 경험한 초등학생 비율은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4∼6학년 약 2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2012년 12.1%에서 지난해 18.5%로 늘었다. 같은 기간 중학생은 23.4%에서 22.3%로, 고등학생은 29.9%에서 26.7%로 감소했다. 이대로라면 초등학생의 자살충동 경험자 비율이 중·고등학생 수준에 육박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전국 초·중·고등학교가 교육부에 보고한 자살시도 학생 451명 중 36명(8.0%)이 초등학생이었다. 지난해(4명)의 9배다. 학교 단위에서 학생의 자살시도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쉬쉬하려는 경향이 있는 만큼 실제 사례는 더 많을 것이라고 현장 교사들은 말한다.

자살충동 경험 연령이 낮아지는 배경엔 신체적·정신적 조숙화가 존재한다. 급격한 신체 변화를 동반하는 사춘기가 앞당겨졌고, 학교 안팎에서 배우고 요구받는 지식과 규범의 수준이 과거보다 높아졌다. 문제는 아이들이 그 변화를 제대로 감당하기 벅차다는 점이다. 초등학생 중에서도 초기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4∼6학년 단계에서 심리적 갈등과 혼란을 많이 겪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춘기가 시작되는 이 시기 아이들은 감정 변화가 크고 우울감을 느끼기 쉽다. 부모의 기대와 사회의 요구가 급변하면서 부담이 커지고 불안정과 부적응을 겪는다.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부족해 외부 영향을 받기 쉽다. 이 때문에 상실감 분노 절망 같은 감정을 자살이라는 극단적 행동으로 표현할 우려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자존감 저하와 우울을 겪는 경우가 많다. 부모와 교사 등 주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또래집단의 정서적 지지가 줄면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우울감을 느낄 수 있다. 우울을 겪는 아이들에게서는 활력 감소, 낮은 자존감, 죄책감, 미래에 대한 절망감을 비롯한 비관적 생각 등이 포착되고 수면장애와 식욕저하 같은 증상이 자주 나타난다. 동시에 학업 부진, 공격적이거나 과잉된 행동, 불복종, 등교 거부, 자기파괴적 행동처럼 우울증의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1990년대 한 해외 연구에서는 자살을 시도했거나 생각하는 청소년의 40%가 우울증의 주요 증상을 보였다.

그들은 ‘얌전한 아이’일까

자살 생각이 싹트는 심리적 환경은 여러 외부 요인으로 만들어진다. 부모 간 갈등과 부모의 양육 방식, 따돌림·학교폭력 등 부정적 교우관계를 비롯한 학교생활 스트레스, 학업 부담, 낮은 사회적 지지가 대표적이다. 2014년 공주대 대학원 간호학 전공 이선미씨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우울이 부모의 양육 태도, 집단따돌림 피해 여부, 학교생활 적응도, 사회적 지지 수준에 영향을 받고 자살 생각에 직접 효과를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초등학생에게는 부모와의 관계가 자살 생각을 유발하거나 증폭시킬 수 있다. 신체적·정신적으로 급성장하는 초등 고학년도 초기 청소년기로 분류하지만 여전히 아동기적 특성을 더 많이 보이는 시기다. 이들은 부모에 대한 심리적 의존이 중·고등학생보다 큰 만큼 영향도 많이 받는다. 주로 부모의 관심 부족이나 지나친 애착, 과잉보호, 감시와 통제, 체벌 같은 태도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2015년 조사에서 가장 많은 초등학생들이 고른 자살충동 이유는 부모와의 갈등(44.0%)이었다. 이 비율은 성적 하락(21.5%)이나 친구관계(10.1%)의 2∼4배 수준이다. 또 어느 집에서나 나타나는 부모 간 갈등은 그 수위와 빈도가 높으면 아이에게 해롭다. 한 연구에서는 부부갈등이 다른 어떤 가족 요인보다 아이에게 부정적 감정과 자살 생각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자살 생각 문제로 교사와 상담한 수도권 지역 초등학교 고학년 A군은 부모 사이가 좋지 않고 자신도 부모와 갈등하는 경우였다. 부모는 한 집에 살면서도 별거하듯 서로를 피했다. A군은 이런 부모 틈에서 역할 부담이 커졌고 심리적 불안을 경험했다. 부모는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풀다시피 했다. 스마트폰 사용 금지, 외출 제한, 친구관계 개입 등 간섭도 심했다. 이런 부모는 아이가 정서적·심리적 문제로 외부 상담을 받는 것마저 꺼린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아이들은 자신의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는 부모 때문에 도움을 받을 기회를 차단당한 채 속병을 앓다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신체적 가해를 동반하는 학교폭력은 물론 집단따돌림도 자살 생각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따돌림은 말을 걸지 않고 점심식사나 등하교를 함께하지 않는 식의 소극적 형태부터 조롱하기, 부탁 거절하기, 말 걸어도 쳐다보지 않기 같은 적극적 형태까지 폭넓게 나타난다. 서울 지역 초등학교 재학생 B군과 C양은 친구들의 거부와 무시를 반복적으로 겪으며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사례다. “친구들은 제가 교실에서 말을 잘 안 한다고 ‘병신’이라고 불러요. 제가 무슨 말을 하면 째려보거나 ‘조용히 하라’고 해요.”(B군), “말을 잘 못한다고 놀림을 받아요. 친구들이랑 잘 지내지 못해 죽을 생각까지 해봤어요.”(C양)

집단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는 대체로 말수가 적고 돌출적이지 않아 어른들 눈에는 ‘얌전한 아이’ 정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다. 이들은 대인관계에 성공한 경험이 많지 않아 위축된 태도를 보인다. 적극성과 사회성을 발휘하지 못해 또래와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무시당한다. 한 초등학생 상담 전문가는 “따돌림을 계속 당하다 보면 남이 자신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것에 익숙해져 또래집단 주변을 빙빙 겉돌며 심리적 문제를 겪게 된다”고 했다.

‘사랑받고 싶어요’

조숙해진다는 건 이성에 눈뜨는 시기가 일러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성 문제는 동성친구와 맺는 관계와는 다른 양상으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이성을 흠모하게 되고 그들로부터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애정 욕구가 채워지지 못하거나 거절감을 경험하면 자살 충동을 느낄 수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D양은 또래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자신의 호감을 드러내지만 번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거절 경험은 공격적인 행동으로 나타났다. 남학생들에게 거친 언행을 하고, 죽겠다며 교실 창문에 매달리기도 했다.

D양은 날씬하지 않은 자신의 외모가 문제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비하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실제로 외모 콤플렉스는 아이들에게 자살 충동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처음 화장을 하는 연령대가 중학생에서 초등학생으로까지 낮아진 현실은 아이들이 자신의 외모와 신체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는지 보여준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2017년도 조사에서 자살충동 위험군 초등생이 “외모 스트레스가 크다”고 답한 비율은 19.4%로 비위험군(2.9%)의 6.7배였다. 이 차이는 학교생활 만족도, 학업 스트레스, 주관적 만족도, 주변의 지지 여부 등 다른 질문에서보다 월등히 큰 격차를 보였다. 몸무게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초등생 비율은 자살충동 위험군이 28.7%로 비위험군(6.1%)의 4.7배였다.

어린아이가 자살을 생각하고 시도하게 되는 까닭은 어느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견해다. 아이들은 자신의 기질은 물론 가정과 학교, 사회 등 환경 전반으로부터 복합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들 상당수는 정말 죽으려는 의도보다 고통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절망이나 상실감, 분노 같은 감정을 표현하려는 목적도 있다.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인 셈이다. 한 상담 전문가는 “아이들에게 부모와 교사, 친구 등 주변의 지지는 우울감과 자기 불만족을 비롯한 각종 스트레스와 자살 생각을 완화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고 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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