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적폐청산으로 외연 넓혀 2기 돌입…‘적폐와의 전쟁’ 어디까지 왔나 기사의 사진
청와대는 권력적폐에 이어 생활적폐로 청산 대상을 넓혔다. 위는 8대 생활적폐에 속하는 갑질, 채용 비리, 탈세, 안전부패 관련 사진들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울교통공사 고용 세습 의혹에 항의하는 배현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 검찰의 한진그룹 압수수색, 탈세 등의 혐의로 조사받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직장 내 갑질금지법 국회 통과 촉구 퍼포먼스, 화재 참사가 발생한 서울 종로 국일고시원.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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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를 청산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자 한 1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이던 지난 5월 10일 페이스북에 올린 소회다.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7월 19일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는데, 1번 과제가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이었다.

청와대는 과제를 발표한 바로 다음 날 각 부처에 공문을 보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명의의 공문은 부처별로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구성 및 운영 계획을 마련해 회신하라는 내용이었다. 임 실장은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에서 “적폐청산은 문재인정부의 중요한 과제지만 적폐청산특별위원회를 구성하면 정쟁 우려가 있어 부처별로 TF를 구성하는 게 좋겠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다수의 정부부처·기관들은 청와대 지시를 전후해 적폐청산 관련 TF를 만들어 운영했다.

정부는 오는 20일 ‘8대 생활적폐’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부른 권력형 적폐청산에 이어 채용 비리와 갑질, 공적자금 부정 수급 같은 민생 분야 적폐청산에 집중하는 ‘적폐청산 2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에 실무를 담당하는 각 부처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수사기관이 주가 됐던 권력형 적폐청산과 달리 생활적폐 청산은 제도 개선과 후속조치 마련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별 TF 활동이 대부분 종료됐고, 기관별로 적폐청산에 대한 개념도 달라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산 대상을 생활적폐로 넓힌다고 해서 권력형 적폐에 대한 정부의 감시가 느슨해지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TF의 성과

각 부처가 운영해온 적폐청산 TF의 성격은 크게 두 가지다.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을 조사하는 TF와 부처별 내부 제도, 관행을 개선하는 TF로 나뉜다. 교육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와 국방부의 군 적폐청산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국정농단 실태 조사가 주된 임무였다. 반면 기획재정부의 국정과제추진TF와 외교부의 혁신TF 등은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드는 역할을 담당했다.

성과도 있었다. 통일부의 정책혁신위원회는 박근혜정부의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 “공식적인 토론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박 전 대통령의 일방적 구두 지시로 이뤄진 결정”이라고 발표했다. 국가정보원은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산하에 적폐청산 TF를 두고 과거 국정원의 불법 개입 의혹이 있었던 15개 사건을 재조사했다.

군 적폐청산위원회는 군의 정치 개입과 인권 침해 사안을 집중 조사해 최근 10년간 장성급 장교의 성폭력 사건 재조사를 국방부에 권고했고, 장교가 현역병을 사적으로 부리는 관행을 금지하도록 했다. 고용노동부의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기본적으로 조직문화 개선을 담당했지만 박근혜정부 때 고용부의 삼성전자서비스 불법 파견 은폐 의혹을 조사하기도 했다. 한 정부부처 관계자는 “TF를 통해 과거 정권의 잘못을 들추는 것을 넘어 조직문화와 기강을 전반적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TF의 이면

국민일보가 적폐청산 TF가 마련됐던 17개 부처를 전수조사한 결과 이달 현재 TF 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부처는 기재부와 통일부, 농림축산식품부, 보건복지부 4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13개 부처의 적폐청산 TF는 활동을 마치고 해체된 상태다. 각 TF의 권고·개선안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점검하는 제도나 조직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폐청산 TF를 총괄하는 국무조정실과 실제로 운영해온 일선 부처의 생각도 달랐다. 국무조정실 측은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없는 조직문화나 제도의 개선, 관행 타파도 적폐청산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내부 TF인 조직혁신기획단 등에서 금융행정 혁신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을 뿐 적폐청산과는 상관없다. 그런 과격한 용어를 쓰지 말라”고 말했다. 적폐청산이란 용어가 일부 공무원을 ‘과거 정권 부역자’로 몰 수 있다는 내부의 우려와 반감이 생겨 사기를 떨어뜨렸기 때문에 이 같은 반응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공직사회에서 적폐청산 드라이브에 대한 피로감이 나타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한 정부부처의 과장급 공무원은 “주로 혁신기획담당관이 TF를 주도했는데 제대로 된 논의도 없었다. 가끔 오후에 몇 명이 모였지만 별 얘기도 안 했다”며 “원래 맡은 업무로 바쁜데 굳이 회의를 해야 되느냐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전했다. 다른 부처의 공무원은 “기존에도 내부 문화를 개선하는 조직과 담당자가 있었다”며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 TF를 만들고 결과까지 발표했으나 사실 업무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적폐청산 2기 과제인 생활적폐를 잡기 위해선 보다 효율적인 TF 운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짝 만들었다 사라지는 부처별 TF 대신 청와대 직속 추진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적폐청산 2기, 잘될까?

생활적폐 청산으로의 방향 전환에 대한 우려도 있다. 권력형 적폐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가장 크다. 이재근 참여연대 정책기획실장은 “아직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국정원 개혁 등이 끝나지 않았다”며 “검찰과 국정원의 힘을 분산하지 않으면 권력형 적폐가 다시 벌어질 수 있다. 아직 생활적폐로 적폐청산의 힘을 나눌 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사립유치원 비리나 고시원 화재 등 큰 이슈가 터질 때마다 땜질식 대책을 내놓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대책으로 지난 7월 정부가 내놓은 것이 단적인 예다. 괴롭힘 예방교육 의무를 어길 경우 사용자에게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는데, 이는 근본적인 대책일 수 없다. 이 실장은 “국민들이 좀 더 체감할 수 있는 적폐청산을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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