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노석철] 마오쩌둥 시대로의 회귀 기사의 사진
중국의 마오쩌둥은 1957년 “15년 안에 (산업강국인) 영국을 추월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당시 소련의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가 “15년 안에 미국을 넘어서겠다”고 하자 제시한 비전이다. 중국 전역에선 1958년부터 ‘농산물·철강 생산량 증대’를 위한 ‘대약진운동’이 벌어졌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고로에 넣을 철광석이 없어 냄비 삽 곡괭이 문고리까지 모든 금속을 녹여 쓸모없는 선철 덩어리를 생산했다. 지방 지도자들 사이에선 곡물과 철강 생산량을 부풀리는 허위보고가 난무했다. 농민들은 강제노역에 동원되고, 농기구도 없는 상황에 병충해까지 창궐해 대규모 기근과 아사로 이어졌다. 대약진운동 5년간 사망자가 4500만명에 이른다는 추정도 나온다. 결국 마오는 대약진운동 실패를 자인하지만, 다시 홍위병을 앞세운 문화대혁명으로 절대권력을 쥐었다. 정적의 숙청과 감시, 통제로 숨 막히는 문화대혁명의 광풍은 마오쩌둥이 사망한 76년까지 10년이나 이어졌다.

만약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부강한 중국은 없었을지 모른다. 중국은 천안문광장에 마오쩌둥의 사진을 걸어놓고 영웅으로 떠받들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끔찍한 악몽이다. 그러나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은 요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우상화와 각종 감시·통제 분위기가 심해지면서 마오쩌둥 시대로의 회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시 주석은 최근 상하이 국제수입박람회에서 “개방은 진보를 가져오지만 문을 걸어 닫으면 반드시 낙후로 이어진다”며 개혁·개방을 역설했다. 그러나 서방의 반응은 싸늘했다. 시 주석의 약속은 늘 공허하고, 중국처럼 폐쇄적인 나라가 미국을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는 정서가 풍긴다. 오히려 최근 개혁·개방 구호가 시 주석의 우상화와 권력 강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중국에선 덩샤오핑 지우기와 시진핑 띄우기가 한창이다. 중국 공산당의 개혁·개방 40주년 그림에서 시 주석은 한가운데 크게 자리 잡고, 덩샤오핑은 뒤편의 흐릿한 동상으로만 처리됐다. 중국 선전시의 개혁·개방 박물관에도 시 주석과 시 주석의 아버지 쉬중신이 부각돼 있다.

개혁·개방을 심화한다면서도 사회 통제와 감시는 갈수록 심해지는 분위기다. 중국은 최근 인터넷 정화운동을 통해 9800여개의 1인 미디어 계정을 폐쇄하고 웨이신(위챗), 웨이보 등 플랫폼에 엄중 경고했다. 중국 정부는 일부 1인 미디어들이 정치적으로 해로운 뉴스 전파, 영웅적 인물 비방 등으로 국가이미지를 훼손하고 가짜뉴스 전파로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했다고 밝혔다. 인터넷 공간을 확실한 정부 통제 하에 두겠다는 의미다.

지난 9일 밤에는 베이징대에서 괴한들이 노동자 권익 운동을 해온 이 학교 졸업생을 구타하고 차량에 태워 사라졌다. 베이징 광저우 상하이 선전 우한 등에서 최근 며칠간 최소 12명의 활동가들이 이렇게 사라졌다. 이들은 마르크스와 마오쩌둥의 이상을 신봉하는 공산주의자를 자처하는 대학 졸업생들인데, 노예처럼 일하는 노동자들의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잡혀간 것이다.

중국 정부의 통제는 홍콩의 자유도 위협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빅터 맬릿 기자는 지난 8일 홍콩으로 들어가려다 입국을 거부당했다. 홍콩 외신기자협회 부회장인 그는 지난 8월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야당 지도자 초청 강연회를 주관했었다.

중국 출신 반체제 작가 마젠은 최근 홍콩의 한 아트센터에서 강연과 함께 신간 ‘중국몽’ 홍보를 계획했으나 돌연 장소 대여가 취소됐다. 마젠은 “시 주석이 마오쩌둥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 주석과 마오쩌둥을 비교하는 목소리가 잦은 것은 좋지 않은 징후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되고 경제가 나빠지면 중국내 여론이 악화될 수 있다. 그러면 중국 정부는 또 다시 통제와 감시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시 주석이 정말 마오쩌둥을 모델로 삼는 걸까.

베이징=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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