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포츠]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거야” 기사의 사진
한준혁이 지난 8일 서울 양천구 양정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드리블을 하며 림을 향해 다가서고 있다. 최현규 기자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8일 서울 양천구 양정고등학교 체육관. 고교 농구부 선수들 틈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키 작은 청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재빠른 몸놀림과 화려한 드리블을 선보인 뒤 3점슛 라인에 서서 슈팅 연습에 매진했다. 올해 한국프로농구(KBL)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해 프로무대 진출을 꿈꾸는 가드 한준혁(21)이었다.

한준혁은 무척 밝아 보였다. 그는 “요즘 제 삶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농구, 그리고 프로 무대에 도전한다는 상황 자체가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오는 26일 열리는 KBL 신인드래프트에는 총 46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한준혁은 지난달 24일 일반인 실기테스트에서 합격해 일반인 참가자로 드래프트 참가 자격을 얻었다. 한준혁은 46명의 참가자 중 최단신이다. 지난달 30일 열린 신인선수 신장 측정에서 170.6㎝가 나왔다. 프로필에 소개된 173㎝보다 더 작았다. 윙스팬(양 팔을 벌렸을 때 길이)은 169㎝, 스탠딩 리치(발끝에서 손을 위로 뻗었을 때의 길이)는 218.75㎝로 역시 46명 중 가장 짧았다. 농구선수로는 분명히 불리한 신체조건이다.

한준혁은 2014년 농구 명문인 서울 용산고에 다니던 시절 전국체전 우승을 이끌었고, 2016년 동국대에 진학해 프로 진출을 노리던 엘리트 선수였다. 단신이긴 하지만 노력하고 기량만 가다듬는다면 대성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입학 6개월 만에 대학선수 생활을 접었고, 지난해 대구 영남대 체육학부에 재입학했다.

평생 키워온 농구선수의 꿈을 왜 접었냐고 물어봤다.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농구가 싫었던 것은 아니에요. 제 키가 작아서 프로에 가서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역으로 뛰다가 은퇴를 하면 무엇을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체육교사다. 치열한 경쟁에 따른 불투명한 미래를 고민한 끝에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자 진로를 바꾼 것이다. 평범한 체대생으로 돌아온 한준혁은 학업에 충실했다. 한준혁은 “1학년 내내 공부에만 매달려서 학과 내 성적 상위 10%에게 주어지는 교직이수 기회를 따냈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교직이수란 비사범계 대학의 학생이 교원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교직과목을 일정한 학점 이상 이수하도록 한 것을 말한다.

지난해 12월 대한민국농구협회가 주최한 3×3 농구 코리아투어 대회는 그의 삶에 또 다른 반전 계기가 됐다. 협회가 3×3 농구 활성화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을 위해 만든 대회였다. 3×3 농구 코리아투어의 대구지역 대회가 한준혁이 다니던 영남대 천마체육관에서 열렸다. 잠시 접어놨던 농구 열정이 다시 꿈틀거렸다. 대회 출전을 결심했다. “대회 최종 선발전에서 우승하면 아시안게임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고 하니 조금씩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두 차례 지역 대회(대구, 광주)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아시안게임 대표로는 선발되지 못했다. 그런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준혁의 플레이 영상이 입소문을 탔다. ‘키가 작지만 굉장히 빠른 농구선수’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한준혁은 ‘왜 프로 무대에 도전을 하지 않느냐’ ‘KBL 코트에서도 보고 싶다’는 등의 댓글을 읽고 용기를 냈다. 그는 “주변의 관심과 SNS 응원으로 자신감을 얻었고, 성원에 보답하려면 가만 있어선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내 스스로도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더욱이 프로 진출은 어린 시절부터 키웠던 평생의 꿈이었다. 나이를 한두 살 더 먹을수록 불리하다는 것을 알았던 터라 한준혁은 도전을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지난 6월 1학기 학업을 마친 뒤 한준혁은 프로 도전에 전념하기 위해 휴학했다. 그는 “처음엔 일반 학생들이 함께 사용하는 학교 체육관에서 불이 꺼질 때까지 연습했으나 시간이 넉넉지 않았다”며 “학업과 개인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었고 농구가 팀 운동이란 점 때문에 혼자서만 연습하는 것에 애로사항이 많았다”며 휴학 배경을 구체적으로 털어놨다.

한준혁은 올 여름 양정고 스킬트레이닝 코치로 활동하며 고교선수들과 합숙훈련을 했다. 매일 5∼6시간의 훈련 일정을 소화하며 조금씩 몸을 만들었다. 주말엔 동호회 농구팀 ‘피데스’ 소속으로 각종 생활체육대회에 출전해 경기 감각을 몸에 익혔다. 그는 “지금은 저의 모든 것을 농구에 걸었다. 제가 좋아하는 농구를 위해 맘껏 시간을 쓰고, 농구를 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며 웃어 보였다.

한준혁은 신체조건이 주는 불리함을 이겨내기 위해 몇 가지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수비 때 힘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웨이트트레이닝을 꾸준히 한다. 기회가 왔을 때 득점을 할 수 있도록 슈팅 성공률을 높이는 것에도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장점을 말해달라고 하자 “남들은 스피드가 좋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신감이 가장 큰 무기라고 본다. 상대 가드가 하프라인을 넘지 못하도록 괴롭히는 압박 수비, 끈질기게 쫓아가서 공을 빼앗는 근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한준혁이 신인드래프트 지명을 받아 프로에 진출할 경우 현역 최단신 선수가 된다. 현재 KBL 최단신은 전주 KCC의 베테랑 가드 이현민과 안양 KGC 가드 박재한(이상 173㎝)이다. 물론 3×3 농구에서 두각을 보이긴 했지만 한동안 농구공을 놓았던 한준혁이 한 수 위의 힘과 높이, 기술을 요구하는 5×5 프로농구에서 통할 것인지, 그리고 프로진출이 가능할 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준혁은 신인드래프트 지명에 부담을 느끼기보다는 순수하게 농구가 좋고, 농구를 제대로 하고 싶어서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저처럼 키가 작은 선수들의 롤모델이 되고 싶어요. 점점 우리나라 가드들도 장신화가 되는 추세인데 키가 작아도 충분히 해볼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생각보다 키 작은 농구선수들이 많습니다. 하하.”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