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지호일] 탄핵 논쟁을 묻을 때 기사의 사진
한 대학의 정치학과 교수가 몇 달 전 사석에서 호기롭게 말했다. “두고 보세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내년 언젠가 풀려날 겁니다.” “여론 반발이 엄청날 텐데, 촛불로 태어난 현 정부가 설마 그렇게 할까요?”라고 물었다. “정의의 문제를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충분히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이죠.”

교수의 설명은 이어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면, 여권에서도 다음 총선에 대한 위기감이 고개를 들게 될 것이다. 청와대는 최후의 타개책으로 박 전 대통령 사면 카드를 꺼낸다. 이미 내란죄 등으로 사형까지 선고됐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 2년 만에 사면된 전례도 있지 않은가. 박 전 대통령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보수진영은 탄핵 반대, 찬성으로 갈라져 총질을 하며 내전에 빠질 터. 여권이 잃게 될 득표수와 보수 분열로 챙긴 이해득실을 따지면….

시나리오의 현실화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정권 정통성 문제와 직결되지 않나. 다만 자유한국당과 주변 상황을 보노라면 사면설이 나도는 까닭도 이해가 된다. “탄핵이 옳았는지 다시 한번 따져보자”, “박 전 대통령은 촛불 선동에 ‘제물’로 넘겨졌다” 등의 주장이 태극기 집회를 넘어 국회의원들 입에서도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국회 탄핵안 의결 2년이 다 된 때에 감옥 속 박 전 대통령을 불쑥 소환하는 모습은 다분히 정략적이다. 우선 SNS, 유튜브 등을 통해 목소리를 높이고 세를 과시하는 친박 지지층에 눈길이 간다. 한국당 인적 청산 작업 및 지도부 교체 시즌을 맞아 극우 세력과의 ‘죽음의 키스’로 살 길을 찾으려는 기류가 감돌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른 편에 선 이들을 향한 증오, 탄핵 찬성파에 대한 ‘배신자 낙인찍기’로 확대 재생산되고, 보수를 부도 상태로 내몬 국정농단 관련자들은 그 틈을 타 빠져나갈 알리바이를 만든다.

친박계 인사들이 말하는 탄핵 재평가란 역사적·정치적 성찰이 아니라, 탄핵 정국에서 박 전 대통령을 등졌던 쪽의 무조건적인 사과와 굴복을 뜻한다. 재평가론 자체가 분열인 것이다.

탄핵 문제에 매여 있는 한 보수의 미래는 없다. 과거 사례에서 보듯 쪼개진 보수에게 선거 승산은 없다. 수명이 다해가는 소수 모사꾼들의 비루한 정치 누아르만 있을 뿐. 그러니 극복할 의지가 없을 바에야 전직 대통령 탄핵 논쟁을 들쑤시는 일은 멈춰야 한다. 분열의 뿌리가 삭아 보수가 새로 돋아날 때 거름으로 흡수될 수 있을 때까지.

지호일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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