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조준모] 탄력근로, 글로벌 현장을 보자 기사의 사진
필자는 근래 외국의 첨단 IT기업들을 방문해 근로시간 운영실태를 파악할 기회가 있었다. 필자가 방문한 독일의 SAP는 미국의 오라클과 더불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업이다. SAP는 ‘Work on Trust’(Vertrauensarbeitszeit)를 모토로 개별 근로자의 시간결정권을 존중하고 도입 절차를 간소화하고 있다. 근로계약서에 재량근로제를 약정하고 전체 사원의 근무 장소와 시간을 50∼80% 자율로 결정하고 있다.

한편 중국 실리콘밸리 선전에는 게임소프트웨어 텐센트, 전기자동차 BYD, 드론 DJI, 스마트폰 화웨이가 있다. 중국은 종합계산근로시간제 아래 1년 단위 탄력근로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부정시(不定時)근로시간제를 두어 개인 근로자의 선택근로제 활용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이와 대비되는 한국 근로시간제도의 경직성은 산업4.0형 IT기업들로 하여금 해외로 눈길을 돌리게 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우리 기업들은 경직적인 주52시간 규제 틀에 갇히게 되었다. 탄력근로제, 재량근로제, 선택근로제의 유연근로 3종세트의 개선이 주52시간 규제 입법 당시 패키지로 추진되지 못해서이다. 탄력근로제는 3개월 전 일단위 근로시간의 사전계획 수립이 어려운 사무직 등에는 적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재량근로제의 경우 대상 업무가 연구개발직, 디자인직 등 매우 제한적 범위에만 허용돼 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선택근로제 역시 단위기간이 1개월로 짧아 그 실효성이 작다.

우리의 근로시간제도가 근로자의 건강권을 지키면서 글로벌경쟁력을 가지기 위한 유연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한 가지는 독일처럼 단체협약을 통해 총량 근로시간과 휴게시간 등 최소한의 규제만 두고 근로시간 사용에 대한 개인의 자율결정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중국(혹은 독일, 일본)의 방식처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재의 3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하되 지원인력인 사무직도 생산라인의 스트림에 맞춰 근무할 수 있도록 선택근로제의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것이다. 다만 근로자의 건강권을 고려해 하루 11시간 휴게시간 보장을 별도 입법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여야 당정협의체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합의했고 고용노동부 장관도 제도 활용 절차 개선을 언급하면서 방향타를 돌린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탄력근로제 단위기간만을 6개월로 협소하게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은 유감이다. 이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재무·회계 등 경영계획이 1년 단위로 수립되는 점, 독일 일본 중국 등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1년 단위기간 탄력근로제를 도입해 왔다는 점, 한 번 6개월로 고쳐 놓으면 국회 구조상 당분간 수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참에 1년으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것이 정답이다. 아울러 선택근로제 단위기간을 현재 1개월에서 2∼3개월로 연장해 생산직과 사무직의 유기적 연계작업이 이뤄지도록 조정해 줘야 한다. 또한 현재 근로기준법 51조 2항에서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수개월 전부터 사전 서면합의해야 하는 경직적 절차를 단위기간 내 매월 정할 수 있도록 조정해 준다면 사무직도 탄력근로제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경직적인 근로시간 규제는 개별 근로자들이 덜 일하고 싶은 날, 더 일하고 싶은 날을 선택할 시간주권을 침해한다. 현재와 같은 베이붐세대형 노사 관계가 근로자 개인의 다양성과 시간주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미래 청년세대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다. 1997년에 만들어진 구식 근로시간제도를 종합적으로 개선하지 않고 봉합하는 데 급급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만 6개월로 협소하게 연장해서는 산업4.0시대의 생산현장에 도움을 줄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개별 근로자와 기업의 필요성을 조화해 근로계약을 통해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선 굵은 노동개혁’으로 산업4.0시대의 주춧돌을 놓기 바란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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