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청년] “누군가의 꿈 찾아주다 하나님이 주신 저희 꿈도 찾았죠”

20개국 57개 도시 찾아 사람들 ‘꿈 여행’ 도운 박태양·정유희씨 부부

[예수청년] “누군가의 꿈 찾아주다 하나님이 주신 저희 꿈도 찾았죠” 기사의 사진
사람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돕는 엉뚱새 성장스쿨의 박태양 정유희씨 부부가 지난 15일 부산 영도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평범한 맞벌이 부부였던 박태양(35) 정유희(33)씨가 ‘꿈 여행’을 떠난 건 결혼 후 맞이한 첫 휴가 때였다. 제주도로 놀러 가자던 아내 정씨가 갑자기 “오빠, 우리 제주도 대신 아이들 꿈 물어주는 여행 떠날까”라고 한 게 시작이었다. 박씨는 “올 게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연애 시절 아내가 자신에게 수없이 던졌던 질문이 꿈에 대한 것이었다. 꿈이 없단 이유로 이별 통보를 해온 적도 있다. 앞으로 하고 싶은 걸 적어보라고도 했다. 박씨는 자신이 그런 시간을 통해 많이 바뀌었듯 다른 친구들에게도 아내와의 만남이 유익할 거라 생각했다. 무조건 가겠다는 아내를 말릴 방법도 없었다. “이번 한 번뿐인데 뭐. 혼자 보낼 순 없잖아. 아내는 내가 지켜야지.” 박씨의 마음이었다. 2013년 8월 그렇게 부부는 둘 만의 ‘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왜 기도제목이 없을까”

정씨가 꿈 여행을 떠난 데는 계기가 있었다. 부산 영도구 제2영도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를 했던 정씨는 주일마다 아이들에게 기도제목을 물어봤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기도할 게 없어요”였다. 그럴 수 있었다. 정씨 역시 학창시절 누군가 기도제목을 물으면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정씨는 아이들에게 “다음 주까지 생각해 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주가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아이들은 기도제목이 없었다.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이유를 물었다. 답은 같았다. “꿈이 없는데 기도할 게 어딨어요”였다.

충격을 받았다. 한창 꿈꿀 나이에 꿈이 없다는 데 놀랐다. 그러나 이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에게 자신의 12살 터울 여동생의 모습이 겹쳐졌다. 정씨 여동생도 꿈이 없었다. 꿈이 없으니까 공부도 하기 싫고 삶에 의미를 두지 못했다. 언니로서 조언을 했지만 여동생은 잔소리로 들었다.

돌파구는 관심이었다. 여동생이 좋아하는 걸 찾았다. 가수 동방신기였다. 동방신기 팬 중 일본인이 많다는 것을 알고 일본어를 배워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언니 말이면 귓등으로 듣던 동생이 관심을 보였다. 일본어를 공부하더니 일본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일본어에 한계를 느끼자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정씨는 자신이 가르치는 주일학교 학생들의 관심사가 뭔지 파악하려 애썼다. 격주로 성경공부와 상담을 병행했다. 놀랍게도 상담을 통해 마음을 연 학생들이 “이 친구도 상담 받고 싶어 한다”며 데리고 왔다. 5명 안팎이던 담당 학생 수가 10여명으로 늘었다. 그는 부족한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퇴근 후엔 코칭 멘토링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동시에 더 큰 꿈을 꿨다. “영도 밖 아이들도 만나자.” 남편과 약속했던 제주도 여행을 포기한 이유다.



“내 꿈은 ○○○입니다”

정씨 부부는 3박4일간 부산 밀양 대구 구미 대전 서울 6개 도시를 돌았다. 50명을 만나는 게 목표였는데 여행을 마칠 때 만난 이들을 세어보니 정확히 50명이었다. 부부는 이들과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2시간 넘게 꿈을 나눴다.

쭈뼛거리던 이도 있었고, 무시하는 이도 있었다. 그래도 좋다. ‘꿈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잠시라도 생각해보는 그 모습이 좋았다. “내 꿈은 ○○○입니다” 이들이 고민 끝에 조그만 화이트보드에 적어 내려간 꿈엔 경중이 없었다.

전도가 목적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레 문이 열렸다. 부부에게 전도사님이냐고 물어오는 사람도 있었고 예전에 교회를 다녔다며 먼저 자기 얘길 털어놓는 이도 있었다. 부부는 아는 목사님들께 부탁해 이들을 교회와 연결시켜 줬다.

일회성으로 끝날 거라 생각했던 여행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광고 영상을 전공한 박씨가 꿈 여행기를 인터넷에 연재했는데 자신도 상담 받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다. 우리 도시는 왜 안 오냐며 다음 여행 땐 꼭 자기네 도시로 와 달라고 요청하는 이도 있었다. 꿈 여행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부부는 부산의 한 작은 카페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열었다. 전국 각지에서 80여명이 모였다.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부부는 각자가 낸 5000원의 참가비를 모아 교회에 헌금했다. 박씨는 “우리 부부에겐 당연한 일이지만 그분들에겐 어쩌면 첫 헌금일 수도 있다”며 웃었다.

부부는 주말마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는 부부의 삶을 바꿨다. 정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박씨 역시 회사에 사표를 냈다. 박씨는 “회사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삶을 계산적으로 보게 됐다. 그런데 꿈 프로젝트는 값을 매길 수 없었다”며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 일로 우릴 사용하려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부부는 꿈 여행 직후 예매했던 호주행 비행기 표를 꺼내 들었다. 영도, 부산, 전국, 그다음은 세계였다.



“My Dream Is ○○○”

꿈 프로젝트 세계 일주를 호주에서 시작하기로 정한 건 우연이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체류 중인 워홀러나 한국인 유학생이 많은 곳이라 마음에 두고 있긴 했지만 호흡 곤란으로 병원 신세를 진 박씨에게 의사가 한 말이 결정적이었다. “공기 좋은 곳으로 가세요.” 그날로 부부는 워홀 비자를 신청했다. 여행비자로 갈 수도 있었지만 부부는 그곳의 삶을 먼저 경험해 보고 싶었다. 정씨는 “먼 이국땅에서 활동하는 청년들과 소통을 하려면 우리도 그들의 삶을 경험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실은 생각보다 고단했다. 한동안은 자기 앞가림하기 바빴다. 박씨는 학교 도서관 청소부로 일을 시작했다. 저녁 10시에 출근해 새벽 6시에 돌아왔다. 일터에선 철저히 혼자였다. 박씨는 1시간짜리 말씀 설교를 8번 반복해 들었다. 박씨는 “‘누굴 만나러 보내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를 만나려고 부르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말씀을 반복해 들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박씨가 들어오면 정씨가 출근했다. 정씨는 어렸을 적 입시 미술을 했던 경력을 살려 학원에 취직해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쳤다.

쉬는 날엔 거리로 나갔다. 한국인뿐 아니라 세계 각 나라 워홀러들을 만났다. 조금씩 소문이 나자 한인 교회, 한인회, 한글학교 등에서 정씨 부부를 찾았다. 호주 체류 마지막 달에는 원하던 꿈을 이뤘다. 정씨는 “워홀러, 유학생, 청년들 중 100명 정도를 모아서 꿈 캠프를 열겠다는 목표를 갖고 출발했는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이를 이뤄 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주시드니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연락이 왔다”며 “한인 워홀러들이 일하는 농장 등을 찾아 회식 하는 비용으로 꿈 캠프를 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왔다”고 덧붙였다. 부부는 호주에서 번 돈을 경비 삼아 이후 1년간 20개국 57개 도시를 돌았다.



“누군가의 꿈이나 내일의 성장을 도울 것”

부부는 2017년 2월 사람들의 꿈을 찾아주는 법인을 하나 만들었다. 이름은 엉뚱새 성장스쿨로 지었다. 엉뚱새는 정씨의 별명이다. 엉뚱한 새댁의 줄임말인데 주변에선 이를 두고 창의적이고 엉뚱한 새, 혹은 엉덩이가 뚱뚱한 새로 풀어 부르곤 했다. 박씨는 “모두가 새라면 앞을 향해 나갈 수 있는데 누군가는 날개로, 누군가는 뚱뚱해 다리로 달려갈 수도 있다”며 “엉뚱하지만 각자 달란트를 갖고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어떤 이는 치킨집이냐 묻고 파랑새 성장스쿨로 잘못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이 이름이 기억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며 웃었다.

엉뚱새 성장스쿨은 그해 4월 고용노동부 산하 사회적기업중앙회로부터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됐다. 하는 일은 전과 비슷하다.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꿈과 진로를 위한 상담 프로그램, 워크숍, 캠프 등을 의뢰 받고 진행한다.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계속한다. 부부는 “꿈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누군가의 꿈이나 내일의 성장을 돕는 학교, 그리고 우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