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손인웅 (24) 2005년 기독교사회복지엑스포 열자 10만여명 찾아

2007년엔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 ‘서해안 살리기 교회봉사단’ 출범

[역경의 열매] 손인웅 (24) 2005년 기독교사회복지엑스포 열자 10만여명 찾아 기사의 사진
손인웅 목사가 2005년 8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1회 기독교회사회복지엑스포 개회식에서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손 목사는 당시 엑스포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웃과 사회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섬김과 봉사를 ‘산 제사’와 ‘영적 예배’로 여기신다. 야고보 사도도 구체적인 행동이 결여된 신앙을 ‘죽은 믿음’이라고 평했다.

성북동 골짜기에서 다양한 사회복지 사역을 시도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지역 공동체에서 쌓은 노하우는 이후 ‘사회복지’ 사역을 확대해 나가는 데 자양분이 됐다.

2000년 들어서면서 교회들 사이에 사회복지사업을 함께하자는 공감대가 생겨났다. 지도자들의 만남은 결실로 이어졌다. 2002년 ‘한국기독교사회복지협의회’가 조직됐다. 이 일을 위해 많은 목회자들이 헌신했다. 옥한흠 김삼환 이영훈 오정현 목사님의 헌신이 돋보였다. 사실 한국교회 전체가 참여해 맺은 결실이었다. 목회자들과 사회복지학 전공 교수들 및 관련 학회, 교인들이 보탠 힘도 컸다.

나는 협의회의 초대 대표회장으로 심부름을 했다. 한국교회를 위해 봉사한 경험은 일생의 큰 보람으로 남았다. 협의회가 태동한 만큼 그에 어울리는 행사가 필요했다.





교회의 봉사 사역을 알리고 이를 통해 시민들과도 소통하며 사역의 영역을 확장해 나갈 필요성이 점차 커졌다.

지도부는 고민 끝에 사회복지엑스포를 열기로 했다. 대회장은 옥 목사님이 맡았고 나는 조직위원장으로 봉사했다. 이렇게 준비했던 첫 번째 기독교사회복지엑스포는 2005년 열렸다. 세미나 같은 학술행사들은 서울 영락교회에서 진행했다. 전시 부스는 시민들과의 접점을 확장하기 위해 서울광장에 마련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무려 10만명이 세미나와 전시 부스를 찾았다. 시민들은 한국교회의 사회복지 현황을 알게 됐고 협의회는 사회와 소통하자는 당초 목적을 달성했다.

첫 엑스포의 성공으로 지도부는 큰 자신감을 얻었다. 2회 행사는 2010년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렸다. 3회 행사는 2016년 서울광장에서 진행됐다. 2회 엑스포를 앞두고 연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과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란 말씀이 마태복음에 함께 있습니다. 겸손하게 봉사하면서도 선한 일을 널리 알리라는 선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구절들입니다. 이를 통해 교회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하고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길 바랍니다.”

기독교사회복지협의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펼쳐 나가던 2007년 12월에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가 터졌다. 대재앙이었다. 당시 협의회 지도부는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그 결과로 ‘서해안 살리기 한국교회봉사단’이 출범했다. 훗날 한국교회봉사단의 모체가 되는 조직이었다. 기름을 닦아 내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던 기독교인들의 구심점도 됐다.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지만 일일이 기름을 닦아낸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의 정성은 복구를 앞당긴 일등공신이었다. 봉사의 저력에 뿌리 내린 한국교회봉사단은 ‘섬기면서 하나 되고, 하나 되어 섬기자’는 기치 아래 10년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지면서 한국교회 사회복지의 든든한 반석이 됐다. 봉사를 통해 교회가 일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기회도 됐다. 한국교회가 가야할 미래도 여기에 있다고 확신한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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