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그가 거창으로 간 이유 기사의 사진
전영창 선생님은 1940∼50년대 미국 웨스턴신학교와 콘콜디아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인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귀국 후 거창으로 들어가 학교를 세웁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 선생님은 귀국 전인 1956년 1월 미국 포틀랜드에 있는 아는 목사님의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마중 나온 교회 사모님의 얼굴이 매우 어두웠습니다. 얼마를 가다 사모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전 선생님, 오늘은 무척 우울한 날입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우리 교회에서 파송한 짐 엘리엇 선교사가 에콰도르 밀림지대에서 살해됐다는 소식이 오늘 아침 왔습니다. 다른 선교사 네 명도 순교했습니다.”

전 선생님은 그날 한밤중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인종도 언어도 다른 인디언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선교사가 있는데 제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조국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길이 무엇입니까.”

당시 대전대(현 한남대) 학장이었던 윌리엄 린튼 박사는 그에게 부학장으로 오라는 초청장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벽지로 들어갑니다.

요즘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순교자의 소식을 듣고 보장된 미래를 버린 그분의 정신이 오늘의 크리스천을 부끄럽게 합니다.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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