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신동엽] SKY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기사의 사진
올해도 우리나라는 노벨상을 못 받았다. 학술분야 노벨상은 나라별 지식경쟁력의 지표다. 1901년 노벨상이 시작된 이래 우리나라는 학술분야에서 유력 후보에 오른 적도 없으나, 인구수나 경제력이 우리보다 훨씬 못한 나라들도 많은 노벨상을 받았다. 인구 840만의 스위스가 20명, 500만의 노르웨이는 9명, 980만의 헝가리는 8명의 학자가 학술분야 노벨상을 받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도 8명의 노벨상 학자가 나온 것을 보면 우리 대학들에 문제가 있음이 틀림없다.

세계 최초나 최고만 살아남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학자들의 연구력은 국가경쟁력의 핵심이고 대학은 각국의 연구개발센터다. 특히 노벨상급 연구는 양질의 역량과 자원이 집중 배치된 서울대 연·고대 등 소위 명문대들이 선도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명문대들의 실상을 보면 노벨상이 없는 것이 당연할 뿐 아니라 앞으로도 불가능하다. 학자들의 역량부족이나 무사안일 때문이 아니라 근시안적 양적 성과주의와 경직된 관료주의, 권위주의적 위계질서에 사로잡힌 대학본부의 시대착오적 행정 때문이다. 그중 단기 양적 성과주의가 가장 심각하다.

연구의 질적 수준을 강조하는 선진 대학들과 달리 우리 대학들의 교수평가는 질보다 양에 초점을 맞춘 점수제로 관리된다. 교수들은 부교수와 정교수 승진은 물론 재임용과 승봉 등 1, 2년마다 실시되는 각종 평가에서 점수를 채우느라 세계적 학술지는 엄두도 못 내고 단기에 쉽게 게재할 수 있는 국내 학술지나 하급 해외학술지에 집중한다. 한 명문대의 경우 논문 수가 세계 9위였으나 질적 수준을 고려하면 250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대학에서 세계적 논문을 썼던 탁월한 젊은 학자들도 귀국하면 온갖 평가에서 요구하는 숫자 채우기에 시달리다 좌절하곤 한다. 대학본부의 근시안적 양적 통제가 노벨상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최근에야 일부 대학이 질적 평가로 전환하겠다고는 했으나 숫자 채우기도 동시에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마치 포디즘공장에서 단순반복 작업을 하면서 명품도 만들어보라는 양상이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전 세계 대학들에서 전대미문의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20년 내에 미국 대학 8000개 중 500개만 남고 다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모든 지식과 정보가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무크 등 대안적 학습플랫폼이 거장들의 강의와 연구를 세계에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상황에서 논문 수에 집착하는 전통적 연구는 설 자리가 없다. 반면 세계적 수준의 창조적 연구를 통한 새로운 지식창출은 갈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대학본부들은 여전히 구시대적 양적 통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 총장 선출이 진행 중인 명문대들을 보면 후보 대부분이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60대다. 이들은 권위주의적 고도성장기에 중·고교를 다녔기 때문에 단기 양적 성과주의가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세계 정상급 연구를 해본 적이 없다. 반면 30, 40대는 환경만 갖추어지면 노벨상급 논문을 양산할 수 있는 탁월한 인재들이다. 우리 대학들의 아이러니는 연구력이 가장 뒤떨어진 집단이 가장 뛰어난 집단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젊은 학자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줘서 수준 높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게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세계 정상급 연구를 해본 적이 없는 구세대는 젊은 학자들을 이해할 수도 없고 결국 발목만 잡을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밥 딜런은 “기성세대들이여, 도와주지 않을 테면 비켜서라. 안 그러면 돌멩이처럼 가라앉을 것이다”고 노래했다. 우리 대학들을 지배해온 보직교수들이 새겨들어야 할 경고다. 그동안 봉사하느라 수고했으니 이제 뒤로 물러나 세계적 논문을 직접 쓰거나 후배들의 활약에 박수라도 보내기 바란다. 안 그러면 대학은 물론 나라가 통째로 가라앉을까 걱정된다. 현재와 같은 서울대 연·고대는 죽고 새 시대에 맞게 근본적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성서는 밀알이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했다. 서울대 연·고대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신동엽(연세대 교수·경영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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