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티 테이블] 내 안의 ‘늑대’ 길들이기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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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 인디언 체로키 부족에게 전해지는 ‘두 마리 늑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할아버지 인디언은 손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애야, 사람의 마음속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단다. 늑대의 이름은 ‘선’과 ‘악’이란다. 선은 기쁨과 평화 사랑 희망 겸손 믿음 연민이 가득하단다. 악은 분노와 부러움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교만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다. 선과 악은 매일 먹이를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단다. 마지막에 누가 이기느냐고? 그건 네가 누구에게 먹이를 주느냐에 달렸단다.”

마음의 균형과 감정 관리에 대한 교훈이 담긴 체로키 부족의 두 마리 늑대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애야, 만일 네가 한 마리 늑대에게만 먹이를 주고 다른 한 마리를 굶주리게 하면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단다. 우리가 약해지거나 방심할 때마다 악이란 늑대가 따라다닐 거야. 두려움을 피하기보다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편이 더 낫단다. 분노, 원한, 슬픔을 궁지로 몰아넣기보다 그들이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들어보렴.”

사실 두 늑대 사이의 전투는 일상에서 매일 벌어진다. 내면의 전투는 힘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이다. 우리의 삶은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자비롭거나, 잔인하다. 우리 내면엔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두 개의 반대 세력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기쁨과 슬픔, 자존감과 수치심, 죄책감과 겸손함, 두려움과 용기 등의 감정이 상호작용을 하다 어느 쪽이 이기느냐에 따라 자신이 정의된다. 여러 가지 감정은 일상의 베일 뒤에 감춰져 있다가 어떤 상황에 직면하면 인간 본성의 얼굴로 드러난다.

내 안 두 마리 늑대의 요구를 파악해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분노, 혐오, 미움…. 우리는 이런 감정을 나쁜 감정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나쁜 감정은 정말 나쁠까?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반작용으로 나쁜 감정을 드러낸다. 상처를 분노와 짜증으로 표현하고, 상처받은 자존심을 미움이나 침묵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오히려 필요한 감정이 될 수 있다. 내면의 감정을 알 수 있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불안과 두려움은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 있음을 알려주는 증상이다. 내면의 감정이 상호작용해 조화를 이루도록 잘 다뤄야 한다.

권수영 연세대 교수는 저서 ‘나쁜 감정은 나쁘지 않다’에서 어쩌면 분노는 그리 나쁜 감정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한다. “분노는 오히려 꽤 친절한 감정일지 모른다. 분노로 인해 자신의 감춰진 상처를 정면으로 만나게 할 수도 있고 자신이 유배시킨 감정들을 다시 안전하게 회복시켜 온전한 내면의 평화를 이룰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노가 주는 시그널에 대한 대처 능력을 갖춰야 한다.”

체로키 인디언의 충고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외면하지 말고 ‘그들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한다. 슬픔이란 감정을 부정적으로 인지하고 외면하려 하지만 슬픔을 바르게 겪고 나야 비로소 마음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치유할 수 있다. 또 슬픔이 위로를 만날 때 기쁨으로 전환되는 ‘공감의 원리’처럼, 슬픔을 기쁨만큼 중요하게 받아들일 때 우린 성장한다.

우리가 두려움과 불안에서 못 벗어나는 이유는 나의 삶을 타인에게 맡기고 있어서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과 향하는 곳을 알면 타인의 중요성은 뚜렷하게 약해진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모호할수록 타인의 목소리와 주변의 혼란, 소셜미디어의 통계와 정보 등이 점점 커지면서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하나님은 불안과 두려움 자체가 죄는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과 씨름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여러 가지 세상의 문제와 심리적인 문제로 힘들어한다. 이젠 불안과 두려움 자체에 얽매여 있기보다 불안과 두려움을 하나님과 어떻게 연결짓기로 할 것인가에 대해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성경엔 “두려워 말라”는 권고가 유난히 많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왜 하나님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두려워 말라고 거듭 말씀하실까. 그것은 ‘내가 너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 주겠다’는 약속이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시겠다’는 언약이다. 또 하나님은 “과거에 내가 네게 했던 일을 기억하라”고 처방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행하셨던 일들을 기억해야 한다. 두려워해도 괜찮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기록하신다(시 56:8∼11).

종교2부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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