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여행] 산재보상의 역사와 언론 기사의 사진
반도체칩을 보드에 꽂는 일을 하던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뇌종양 등 판정을 받고 꽃다운 나이에 잇달아 세상을 떠난 일들이 지난 십수년간 벌어졌다. 유가족들이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은 것은 물론 “작업환경으로 생긴 병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힘들다”며 산재 보험금 지급이나 직업병 판정도 거절당하던 소식이 지면을 통해 전해지곤 했다. 그런데 비로소 삼성전자 측이 “건강유해인자에 의한 위험에 대해 충분하고 완전하게 관리하지 못했다”는 시인과 함께 조정기구의 중재판정을 이행키로 했단다.

유가족들로서는 지나간 시간이 무척이나 긴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일하다 다친 것을 보상하려는 ‘인간 상식’이 구축된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길다. 한 해외 정형외과 저널에 실린 ‘산재보상의 역사(A Brief History of Worker’s Compensation)’에 따르면 이미 기원전부터 수메르인들의 기록은 물론 함무라비 법전, 그리스·로마·아랍·중국 고대 법전에 일하다 다친 이에 대한 보상 기준이 나온다. ‘엄지 관절은 다른 손가락의 절반의 가치’, ‘귀 하나의 가치는 그 표면적에 의거해 결정’ 등 말이다. 중세시대에는 오히려 후퇴, 농노가 다칠 경우 영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유일하게 기댈 곳이었다.

산업혁명기 노동자들의 산재보상 틀의 대표적인 예는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에 의해 구축됐다. 당시 마르크스의 ‘자본론’ 탄생으로 유럽에 사회주의 바람이 불던 시기에 정치적 실용주의자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하던 채찍과 함께 독일 노동자를 위한 당근으로 1871년 고용주 책임법과 1884년 노동자 사고 보험을 도입한다. ‘인간 운명의 부조리와 현대 인간의 실존적 체험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표현’했다는 독일 실존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도 이 노동자용 당근으로 만든 노동자재해보험국의 직원으로 근무했다. 이때 산업재해 판정 등의 경험이 그의 실존주의 작품을 위한 영감의 소재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산재보상이 독일에서는 통치의 한 방편으로 시작되었다면 미국에선 20세기 들어 사회 전역을 휩쓴 진보주의(progressivism) 물결의 한 결과물이었다. 특히 이 사회 개혁의 분위기는 갈퀴로 거름을 펴면 덮여 있던 논바닥이 드러나듯이 사회의 비리를 폭로하던 추문폭로(muck-raking) 저널리즘이 활발히 전개되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평이다.

추문폭로 저널리즘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사회주의 소설가 업튼 싱클레어가 쓴 ‘정글’이다. 1906년 출간된 이 논픽션 스토리는 미국 시카고의 도축장에서 일하는 리투아니아 이민자의 이야기로, 도축 및 육류 포장회사의 열악한 근무 조건과 불결한 위생 상태를 고발하고 있다. 작가가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초대될 만큼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식의약품법, 육류검사법 등 위생 관련법과 함께 고용주책임법이 연방 의회를 통과하게 하는 힘이 됐다.

이처럼 산재 보상의 상식은 기원전부터 21세기까지 긴 역사를 가졌고 언론도 그 형성에 한몫했다. 부조리하다 여길 만큼 기구한 인간 운명들에 대비해 이 상식의 유지는 사회가 부어야 할 곗돈이 아닐까. 언론은 그 곗돈 관리의 파수꾼이고 말이다.

주영기 한림대 미디어스쿨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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