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손병호] 이해찬의 ‘취재원 갑질’ 기사의 사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별일이 없는 한 오전과 오후 하루 두 차례 관저 입구에서 기자들과 질문을 주고받는다. 과거엔 더 많이 시달렸지만, 기자들이 온종일 쫓아다니면 국정 수행에 방해가 되기에 하루 두 차례만 현안에 답하는 것으로 신사협정을 맺었다. 모두 길을 가다 멈춰 발언하는 형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백악관 내에서 헬기나 차량으로 이동할 때 길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다. 아무리 급해도 1∼2개의 현안에 대해 코멘트한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길거리 답변은 물론, 예고 없이 기자실을 찾아와 현안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이 길에서 취재진 질의를 받아 답변하는 것은 정착된 관례다. 정치적 영향력이 큰 이들의 그런 답변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일이자 정치인으로서의 기본 책무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에서 거의 유일하게 ‘길거리 답변’을 거부하는 이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난 길에서 답변을 안 해요.” 이 정도만 얘기하면 양반이다. 이 대표는 지난 19일에는 기자들을 아주 거칠게 대했다. 취재진이 이재명 경기지사와 관련한 당의 입장을 묻자 “그만들 해 이제”라고 신경질을 내더니, 이윽고 다시 “그만하라니까”라고 소리를 질렀다. 길에선 답변을 안 하겠다는데 불편한 질문을 계속하니 짜증이 났겠지만, 집권당 대표가 그 정도 사안에 그렇게 대놓고 신경질을 부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과했다. 카메라가 그렇게 많이 있는, 국민들이 다 지켜보는 자리에서 말이다. 언론을 그렇게 막 대하는 모습이 마치 힘 있는 취재원의 갑질처럼 느껴진다. 일선에서 그런 구박을 당하면서 취재를 하는 후배 기자들이 걸려 지금도 밥이 잘 안 넘어간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얼마 전만 해도 ‘달라진 이해찬’이라는 칼럼을 쓰려 했다. 이 대표가 과거의 독하고 깐깐한 인상에서 벗어나 주변과 소통을 많이 하면서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이 대표가 그야말로 정적이랄 수 있는 사람들까지 등용하면서 탕평 인사를 하더라”라고 호평했고, 다른 의원은 “이 대표한테 평생 선물이라곤 받아보지 못할 줄 알았더니, 최근 북한 다녀와서는 의원들에게 들쭉술을 다 돌려 놀랐고, 추석 때도 전복을 선물해 ‘이 대표한테 이런 면이 다 있네’라고 느꼈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당 회의에서도 ‘큰 줄기’만 언급하면서 점잖게 교통정리 정도의 역할만 하고 과거처럼 꼬치꼬치 다 간섭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렇게 달라지고 있다면, 친노 일각의 주장처럼 차기 대선후보가 되지 말란 법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해 들었던 그가 막내급 기자들한테 신경질을 부리는 모습은 퍽 당황스러웠다.

이 대표는 정치인 개인이 아니라, 집권당의 대표다. 당시 기자들이 계속 따라붙었던 것도 주말 사이 이 지사 사건이 커지면서 집권당 대표의 입장을 묻기 위해서였다. 따로 자리를 만들어 입장을 내놓지도 않고, 당일 아침 회의에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이후 길거리 답변까지 거부하던 그는 한참 지난 뒤인 지난 23일에야 간담회를 열어 몇 마디 했다. 기자들한테는 시의성이 퍽 떨어져 기사가 별로 안 되는 때였다.

세상의 많은 특종은 취재원들을 귀찮게 할 정도로 쫓아다니고, 답하기 싫어하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진 결과로 빚어진다. ‘양진호 갑질’ 사건이나 문재인정부를 탄생시킨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도 마찬가지다. 기자의 질문 공세가 싫다면, 또 길거리 인터뷰가 싫다면 그런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는 덜 중요한 정치인이 되면 된다. 집권당 대표가 됐으면서 내키는 때와 장소에서만 말을 하겠다는, ‘주는 밥만 먹으라’는 식의 태도로는 여론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집권당 대표의 그런 덕(德) 없음이 계속된다면 결국 국민이 그 집단 전체에 등을 돌릴 것이다.

손병호 정치부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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