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리시탄 피흘린 자리에서 순교정신을 배우다

일본 나가사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순례지를 가다

기리시탄 피흘린 자리에서 순교정신을 배우다 기사의 사진
한국교회 순례단이 지난 27일 나가사키현 오무라시 호코바루 순교기념비를 둘러본 뒤 일본의 순교자들과 일본 복음화를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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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엔 유럽의 침략을 두려워한 정부가 기독교 신앙을 금지했습니다. 철저한 단속으로 ‘기리시탄’(일본 막부시대 크리스천을 가르키는 말)들은 사라진 것으로 보였지요. 하지만 계곡 등에 숨어 기독교 그림을 그리고 기도했지요. 한 농부가 누설하는 바람에 또다시 기독교 탄압이 시작됐습니다. 붙잡히면 참형에 처했지요. 죽은 크리스천이 부활할 것을 겁낸 일본은 기리시탄들의 머리와 몸을 따로 매장했습니다.”

관광가이드 박철학(46)씨의 설명에 320여명의 한국교회 순례단은 순교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일본교회 목회자와 시 공무원도 동참했다. 찬송가 336장을 부르는데 숙연함이 느껴졌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성도는 신앙 지켰네/이 신앙 생각할 때에/기쁨이 충만하도다/성도의 신앙 따라서/죽도록 충성하겠네….”

순례단은 일본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민족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교회연합과 일치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교회마다 거룩함을 회복하고 전도의 열정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기원했다. “주여 주여”를 외치며 부르짖는 순례단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예수님의 상을 밟고 갈 것인가. 못 판을 밟고 지나갈 것인가.’ 순례단은 그 옛날 일본의 크리스천들이 처했던 상황을 체험해보며 그들의 죽음을 조용히 묵상했다.

교인들과 함께 왔다는 김승훈(43) 당진 동일교회 집사는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다. 순교의 피가 씨앗이 돼 일본 복음화를 위한 좋은 결실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바랐다.

권창규(46) 대구 좋은가족교회 목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의 정신을 본받을 것이다. 다음세대에 널리 전해지길 기도했다”고 말했다.

순례단은 ‘나가사키 순교지 순례’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26∼30일 이곳을 방문했다. CBS는 2005년부터 이 순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10만여명의 순례객이 이곳을 찾는 등 CBS는 지역의 역사·문화적 가치 발견에 큰 역할을 했다. 28일에는 나가사키현 북부 항만도시 사세보와 협약식도 가졌다.

나가사키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 의회는 등재추진특별위원회를 구성해 ‘2011년 나가사키현민이 전력을 다하자’는 결의서까지 채택했다. 하지만 번번이 등재에 실패했다. 당시 유네스코는 “나가사키의 성당 등 기독교 건축물은 유럽에 비해 문화·역사적 가치가 낮다”고 평가했다.

이에 CBS는 “나가사키현의 기독교 박해 이야기는 소중하고 독특한 문화유산”이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나가사키현은 등재를 재신청했고, 마침내 지난 6월 유네스코는 나가사키현 11곳과 구마모토현 1곳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결정·발표했다(지도 참조).

일본 공무원들은 순례단의 주차를 도우며 봉사했다. 오무라시 산업진흥부 우에노 히데노리(50)씨는 “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았으면 좋겠다”며 “순교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감동이 된다. 도대체 예수가 누구길래 이렇게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를 두고 일본에서 40년 넘게 목회한 신현석 목사는 “훗날 일본 기독교사에 포함될 만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정서상 공무원이 기독교 행사를 돕는 행위 자체가 금기시 돼있기 때문이다. 신 목사는 “일본 공무원들의 이 같은 인식 변화는 향후 일본 선교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미전도종족에 가까울 정도로 낮은 복음화율을 보이고 있다. 선교사들에게 일본은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어려운 나라 중 하나다. 일부는 ‘선교사들의 무덤’이라 부른다. 최근 자국의 선교사를 철수시키는 나라도 있다.

가이드 박씨는 “일본인들은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모두 ‘가미(신)’로 받든다. 해 들 산 나무…. 일본엔 약 800만개의 가미가 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이 있다. 일본의 가정집에 가보면 방안에 조그마한 신단인 ‘가미다나’가 있는데, 이것은 조상의 신위나 신상, 상징물을 숭배하는 재단이다. 반면 기독교는 하나님 유일신 사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인은 기독교를 잘 받아드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신 목사는 “신도(神道)는 일본의 전통종교인데 ‘신의 길’이라는 뜻이다. 야스쿠니 신사가 대표적이다. 특히 천황은 신의 자손이고 살아있는 신이라고 믿고 있다. 신도 신앙으로 무장한 일본인들은 국가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2차 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천황은 살아있는 신’이라는 주장은 공식 폐기되고 신도교육도 금지됐다. 하지만 오랫동안 일본인의 생활의식을 지배해온 신도 신앙은 아직 남아있다. 일본인들 마음에 하나님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이유”라고 했다.

이번 순례에 참여한 안영진 분당 한신교회 장로는 “나가사키 순교지에 처음 왔다. 한국교회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일본교회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배웠으면 한다. 함께 세계복음화를 위한 동역의 길로 나간다면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하는 진정한 신앙공동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손달익 서울 서문교회 목사는 “순교의 피를 흘렸음에도 일본교회가 성장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일본선교의 책임은 가까운 이웃인 한국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가 효율적인 선교전략을 세워 일본 복음화에 적극 나섰으면 한다”고 말했다.

나가사키=글·사진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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